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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가을과 함께 깊어간다, ‘대표’의 고민[포도나무 아래서/신이현]〈64〉

신이현 작가
입력 2020-10-13 03:00업데이트 2020-10-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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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
대출 관련 업무로 은행에 갔더니 “회사가 설립 후 지금까지 당기순이익이 전혀 나오지 않았네요” 한다. 나는 회사 대표지만 당기순이익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어머, 진짜요?”라고 답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왠지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았는데 왜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라고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재무제표 같은 것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무제표는 그냥 정기적으로 세무사가 주는 것이고, 법적 서류일 뿐이라고 여긴다. 입출금 통장의 숫자도 제대로 보지 않고 세금계산서도 마지막 날 부랴부랴 발행한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싶어서 사업의 우리말 뜻을 찾아본다. 경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싶어서 경영의 뜻도 찾아본다.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결합한 조직의 관리와 운영을 가리킨다고 한다. 현재 농업회사 법인 대표인 나의 사업 점수는 여러모로 낙제다. 다들 나를 대표님이라고 부르지만 무척 어색하다. 사실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요즘 들어 부담스러운 여러 말들을 듣는다. ‘파이팅!’ 이 말도 왠지 싫다. ‘대박나세요!’ 이 말은 더 싫다. 파이팅하기도 대박나기도 싫다. 이 정도면 대표직을 물려줘야 하는데 받아줄 사람이 없다.

대박나라든가 파이팅이라든가, 이런 말을 들으면 ‘아, 듣기 싫어요. 꼭 그래야 하나요?’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냥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의바르게 답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일을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전에 명시된 사업의 ‘일정 목적’이란 것이 대박일까? 사업이란 것이 꼭 발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회의를 한다.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지? 너무 힘들다. 쉬고 싶다. 열대 과일이나 잔뜩 먹고 싶다. 더운 나라에 가서 수영을 하고 싶다.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을 들으며 잠에 든다.

어릴 때 대기업 총수들이 쓴 자서전들을 읽은 적이 있다.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들은 하루에 잠을 세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어떻게 세 시간밖에 안 자고 살 수 있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진실일까 싶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진실일 것 같다.

나는 잠을 적어도 일곱 시간 자는데 그렇게 자니까 일이 안되나 보다. 매일 일이 밀리고, 제대로 처리 못 해 동동거린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바로 처리할게요! 양해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내가 한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잠을 줄여볼까? 잠을 줄였더니 일이 더 안된다. 법인 설립 4년 차, 총수의 고민이 가을과 함께 깊어간다.

그냥 남편이 농사지어서 와인 만들고 싶다고 하니까 “그래 좋아” 하고 시작했다. 목적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현재 이것을 원하니까 시작했다. 단순무식이 사람 잡는다. 계속해서 뭔가를 사들여야 했고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문제라는 놈이 “저도 있어요!”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물어물어 땜질하듯이 해결해왔다. 그때마다 레돔에게 왜 나를 이 일에 끌어들였냐고 화풀이를 하다가도 미안해서 입을 다문다. 제대로 된 경영을 해온 것이 아니라 겨우겨우 넘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어서 오세요. 제가 사업의 맛이 뭔지 지금부터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하고 길게 펼쳐져 있다.

국어사전 사업의 뜻을 그대로 둬도 되는가 싶다. 내 사전에 사업의 뜻은 ‘돈을 계속 잡아먹고 일도 계속 시키지만 별것도 주지 않고, 계속 더 달라고 조르는 아이’, 이렇게 답이 나온다. 바깥은 곱게 단풍 드는 계절인데 나는 마의 계곡에 들어선 기분이다. 모든 농부와 제조업자들이 다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힘내세요. 살다보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아무래도 뺨 맞을 것 같다.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신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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