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2년뒤 1000조원… “아직은 재정 여력” “증가 속도 너무 빨라”[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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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적정수준 논란

세종=구특교 경제부 기자
세종=구특교 경제부 기자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충분한 재정 여력을 갖고 있다. 부채가 일시적으로 늘더라도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3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책조정회의 발언)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국난을 핑계로 재정으로 생색만 내고 뒷감당 대책은 전혀 없다. 5년 단임 정부가 장기 국가재정을 위태롭게 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8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연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전시(戰時) 상황까지 겹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을 두고 어느 때보다 논란이 거세다. 2년 뒤 나랏빚은 1000조 원을 넘어서고, 4년 후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에 육박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위기와 절벽에 내몰리는 취약계층을 고려하면 빚을 내서라도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해 경제 추락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면 재정 여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국가 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재정을 아껴 써도 건전성 유지가 어려운 판에 지금처럼 돈을 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라 곳간이 허물어지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나랏빚은 어느 수준까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 문 대통령도 재정건전성 마지노선 40%로 봤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2005년 25.9%에서 10%포인트 높아지는 데 11년이 걸렸다. 외환위기(1997∼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때도 국가채무 비율은 3%포인트대가 높아지는 데 그쳤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36.0%였던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 예산안대로라면 46.7%로 치솟은 데 이어 2022년(50.9%)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5년 만에 약 15%포인트가 오르는 것이다. 2017년 국가채무 660조 원으로 시작한 이번 정부가 5년간 400조 원 넘게 빚을 늘려 2022년 1070조 원의 채무를 다음 정권에 넘기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 인구 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지금처럼 이어질 경우(현상 유지 시나리오) 국가채무 비율이 2030년 77%, 2045년 99%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2015년 발표한 장기재정전망 결과와 비교해 5년 새 20∼30%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그동안 국내에선 국가채무 비율 40%대가 정부가 지켜내야 할 재정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40%가 깨졌다. 이명박 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2016년 예산안 발표 때 국가채무 비율은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추후 세수 호조, 재정 지출 구조조정 등으로 시기가 늦춰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40% 안팎으로 관리하겠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문 대통령이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재정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신호탄이 됐다.

○ 비(非)기축통화국, 나랏빚 더 조여야

일각에서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부채 수준이 훨씬 낮기 때문에 빚을 더 끌어다 쓸 여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2018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국가채무 비율(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포함)은 108.9%로, 한국(40.0%)보다 훨씬 높다. OECD도 국가채무 비율 60% 이내를 재정 건전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의 적정 수준은 기축통화국 여부와 대외 의존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7월 내놓은 ‘국가채무와 국제 비교의 적정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기축통화국의 적정 국가채무 비율은 97.8∼114.0%인 반면 비(非)기축통화국은 37.9∼38.7%로 추산됐다.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아 대내외 환경 변화에 민감한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적정 비율은 41.4∼45.0%로 추정됐다.

실제 미국(106.7%·2018년 기준), 일본(224.2%), 영국(116.6%) 등 기축통화국의 부채 비율은 높은 편이다. 아무리 빚이 많아도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만큼 국가부도 위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가 급증해 임계점을 넘으면 국가신용도 추락과 환율 불안, 외화조달 비용 급증 등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릴 수 있다. 퍼주기 복지에 재정을 펑펑 쓰다 나라 곳간이 바닥난 그리스가 대표적 사례다. 그리스는 1983년 33.6%이던 국가채무 비율이 10년 만에 100%를 넘었고, 결국 2010년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 2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46%까지 높아질 경우 국가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부채의 절대적 수준보다 가파른 증가 속도에 대한 우려가 더 많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국가채무는 4번째로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문재인 정부 전 재정개혁특별위원회 특위위원)는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75년간 복지 수요를 늘려온 반면 한국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15년간 복지 예산을 빠르게 늘렸다. 재정 지출 확대 기간이 유럽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증가 속도는 오히려 더 빠르다”고 지적했다.

지금 같은 기조라면 2024년까지 정부가 목표한 채무 비율 50%대를 사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재정학회장)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국가 수입은 줄고 빚은 늘어나니 재정 적자 폭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근본적인 재정 개혁이 없다면 현재로선 정부 목표치를 지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부채를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 지금보다 부채 비율을 더 높여도 환수가 가능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정의 상당 부분이 미래에 환수되지 않는 경직성 복지 예산에 투입되는 만큼 이런 접근은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많다.

○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마련해야

국가채무 비율을 낮추려면 성장률을 높이거나 나랏빚의 절대 규모를 낮춰야 하지만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데다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급증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5년 임기의 정부가 재정 실효성을 따져 나라 곳간을 깐깐하게 관리하기보다는 선심성 예산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빚 폭탄’ 돌리기를 반복할 요인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무턱대고 나랏돈을 쓰지 못하도록 제동 장치를 다는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국가채무 비율을 제어하거나 재정수지 적자가 일정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OECD 회원국 중 한국과 터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재정준칙을 가동하고 있다.

스웨덴은 지난해 정부 부채를 GDP의 35%, 재정수지 흑자는 GDP의 0.33% 이내로 유지하게 하는 새로운 준칙을 도입했다. 독일은 ‘수입과 지출은 원칙적으로 균형이어야 하고, 신규 채무가 GDP 대비 0.35% 이내여야 한다’고 헌법에 아예 명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의 국가채무 비율은 2012년 90.4%에서 지난해 69.3%로 크게 낮아졌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이달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는 예외 조항을 두되 원칙적으로 일정 수준의 채무 비율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유연한 방식’의 준칙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반대가 심해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재정준칙이 처음 적용되는 것은 2022년 예산 편성부터라 사실상 현 정부가 지킬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재정준칙의 유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실질적인 효력을 낼 수 있도록 독일처럼 구속력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과거 정부들은 초기에 재정 투입을 늘렸다가 후반기에 낮추는 식으로 재정건전성을 암묵적으로 지켜왔다”며 “정부 스스로 재정 규율을 지키기 어렵다면 강제성을 수반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세종=구특교 경제부 기자 kootg@donga.com


#국가채무#재정 여력#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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