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길 잘했다[이재국의 우당탕탕]〈4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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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동안 쓰레기를 보관하는 데 평당 1억 원을 쓰고 있었던 거야.”

술자리에서 내뱉은 선배의 한마디에 귀가 쫑긋해졌다. “그래서 다 버리신 거예요?”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고,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마 전에 내 방을 봤더니 안 쓰는 물건들이 너무 많더라고. 베란다에 가봤더니 애들 어렸을 때 쓰던 카시트가 아직도 있는 거야. 막내가 중3인데. 강남 아파트가 평당 1억 원씩 한다고 그러는데, 그야말로 안 쓰는 물건 보관하는 데 그 비싼 돈을 내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충격을 받고 쓸데없는 짐을 최대한 다 버렸어.”

선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이 좁으면 좁은 대로 쌓아두고, 넓으면 넓은 대로 여기저기 방치해두고. 정말 집안에는 쓸데없는 물건이 너무 많다. 오죽하면 ‘정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곤도 마리에도 집안에 있는 물건 중 가슴이 뛰는 물건이 아니면 모두 버리라고 충고했고, 요즘 연예인의 집안 정리를 대신 해주는 TV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비우기 대열에 합류하기로 하고 일단 내 방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책. 학창 시절 교재로 샀던 책들부터 분류하고, 다음은 철 지난 자기 계발서를 분류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그리고 몇 번 읽어도 재밌는 책들, 특히 사 모았던 만화책은 남겨두기로 했다. 다음은 음반. 라디오 작가를 오래한 덕분에 집에 CD가 너무 많았다. 요즘 내 생활을 심플하게 정리 중이라고 했더니 후배 녀석이 “형! 그걸 왜 그냥 버려요! 요즘 중고 거래가 얼마나 많은데.” 아참! 중고 거래가 있었지?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리기로 마음먹고 이번에는 창고를 털었다.

10년 넘게 캠핑을 다니며 모은 캠핑 장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텐트도 4개나 있고, 의자도 6개, 에어매트에 쿨러까지 안 쓰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텐트와 에어매트 그리고 캠핑 의자를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자주 안 쓰는 물건이었지만 모두 소중한 물건이었고, 아끼는 물건들이었다. 팔까 말까 망설임도 있었지만 심플하게 살기로 한 이상, 좋은 주인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좋은 물건이라서 그런가 올리자마자 쪽지가 막 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쪽지를 보낸 사람에게 팔기로 했는데, 정말 10분도 안 되어 판매 장소에 나타나셨다. 우린 둘 다 비밀 거래를 하듯 마스크를 쓰고 돈과 물건을 주고받았다.

그날 저녁 텐트를 사겠다는 분에게 쪽지가 왔다. 캠핑이 처음인데, 아이들이 너무 하고 싶다고 해서 텐트부터 사고 싶다고 했다. 혹시 산다면 텐트 치는 법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서, 당연히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나는 텐트를 들고 남산 공원으로 갔고, 거기에서 그분께 텐트 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돈을 받아서 집에 왔다.

일주일 뒤에 그분이 캠핑 잘 다녀왔다며 캠핑 사진을 보내왔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버리고, 비우고 그러면 나만 좋은 줄 알았는데 현명하게 비웠더니, 그게 누군가의 행복이 되고 내 마음도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역시, 비우길 잘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비우기#중고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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