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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트럼프의 공직윤리[횡설수설/우경임]

입력 2020-05-26 03:00업데이트 2020-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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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넘치고 늘 사랑을 속삭였던 사람’ ‘소고기 스튜로 가족들에게 이름을 날렸던 사람’.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 명에 근접한 24일 뉴욕타임스(NYT)는 1면을 비롯한 4개 면에 사망자 1000명의 이름과 각각 설명을 단 부고 기사를 게재했다.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는 제목처럼 이들은 사망자 1, 2, 3…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NYT가 긴긴 부고 기사를 작성 중이었던 22, 2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소유 골프장인 버지니아주 ‘트럼프 내셔널’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골프를 중단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76일 만에 필드에 나간 것은 경제 재개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 당시 골프를 쳤던 것을 비판한 그의 트윗 글이 회자되고 있다. 이런 ‘내로남불’ 행태가 없다.

▷문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트럼프식 정의가 미국 공직사회를 지탱하는 가치인 정직과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세금으로 인맥 관리용 만찬을 즐기고, 보좌관에게는 반려견 산책과 세탁물 수거 등 사적인 심부름을 시켜 ‘갑질’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러시아 스캔들’ 위증으로 유죄가 인정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기소를 취소해 사법 정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본인 소유 플로리다 리조트에서 열고, 그 호텔·리조트에 연방공무원을 1600박 이상 묵게 하는 등 공사 구분이 없다. 딸과 사위가 버젓이 국정을 휘젓는다. 그의 눈높이에선 ‘부하 직원에게 개 산책시킨 게 뭐가 문제냐’ 싶었을 것 같다. 트럼프는 국무장관의 갑질 논란에 대해 “그는 (보좌관에게) ‘내 개를 산책시켜 줄 수 있느냐. 나는 김정은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감쌌다.

▷트럼프와 골프를 쳤던 이들을 인터뷰해 ‘커맨더 인 치트(Commander in Cheat·속임수 사령관)’란 책을 쓴 스포츠 기자 릭 라일리는 “트럼프가 골프를 치듯, 그러니까 규칙은 마치 다른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처럼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고 했다. 골프에서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저 이기는 데만 몰두하는 것처럼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그의 행보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공직자로서 책임과 윤리, 헌신이 없는 대통령 한 명이 공직사회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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