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사외이사 하겠다는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의 부적절한 처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이 하나은행의 사외이사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신규 사외이사로 추천됐고, 19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최종 선임을 앞두고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 전담기구의 설립을 책임진 인사가 시중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려 하는 데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제처장을 지낸 남 단장은 지난달 10일부터 공수처 설립 준비 업무를 총괄해 왔다. 현 정부가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추진해온 초대 공수처의 틀을 만든다는 점에서 남 단장에게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은행 측은 남 단장의 법률적 전문성을 고려한 것일 뿐 다른 배경은 없다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은행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설명을 액면대로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은행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앞으로 정부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시기다. 남 단장의 사외이사 선임 절차도 금융당국 제재 직후에 이뤄졌다. 이런 정황 때문에 남 단장 선임이 외풍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것이다.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민간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해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하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를 설립하는 준비단장이 은행의 사외이사를 맡아 한 해 수천만 원의 보수를 챙기는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크다.

그간 정부는 사외이사가 공직자들의 ‘낙하산’ 통로나 ‘방패막이’로 악용되는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의 사외이사 겸직은 이 제도를 개혁해 보겠다는 정부 정책의 취지를 퇴색시킬 것이다.
#하나은행#남기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