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신뢰를 얻는 ‘선데이 콜’의 교훈[광화문에서/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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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매주 일요일 오후 7시경이면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정이 있어 혹시 못 받아도 받을 때까지 두 번, 세 번 울렸다. 1시간 정도 빠르거나 2, 3시간 늦어질 때도 있지만 일요일 오후는 바뀌지 않았다. 바로 ‘선데이 콜(Sunday Call)’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한 중학교 교장. 그는 일요일마다 학부모들에게 전화한다. 이 학교 재학생은 900명 남짓. 인구 6만 명가량인 도시에서 가장 큰 중학교다.

물론 교장이 모든 학부모와 통화할 수는 없다.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교장이 직접 녹음한 것이다. 새 학기를 앞둔 첫 번째 선데이 콜에서 교장은 환영의 메시지와 함께 기본적인 학사일정, 선택과목 안내 등을 설명했다. 학기가 시작되면 보통 새로운 일주일 동안 중요한 일정과 변경된 수업프로그램 등을 전한다. 물론 전화 후에는 같은 내용의 e메일이 모든 학부모에게 발송된다.

여기까지 보면 선데이 콜은 그저 평범한 가정통신문의 ‘음성버전’일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전화를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올해 초 교장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바로 직전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이었다. 그는 발생 시간과 장소, 학교 측의 대응, 후속 조치에 대한 계획까지 친절히 설명했다. 이어 걱정할 학부모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물론 해당 학생의 신상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학생 안전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가끔 평일에도 교장의 전화(Important Call)가 걸려온다. 지난해 11월 교내에 경미한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교장은 자세한 사고 경위와 조치를 설명했다.

선데이 콜은 기자가 현지에 연수를 위해 체류한 1년 가까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때로는 방학 중에도 걸려왔고 교장이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비우면 교감이 대신했다. 첫 전화 때 “뭘 이렇게까지…”라는 의아함은 시간이 갈수록 “이번엔 무슨 내용일까”라는 궁금증으로 변했다. 궁금증이 학교에 대한 신뢰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록 녹음이지만 교장의 목소리에는 A4용지나 모바일메신저, e메일 속 글자가 전하지 못하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한국 같으면 쉬쉬했을 사안까지 숨김없이 설명하는 걸 듣다 보면 학부모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투명하고 정직한 소통이 학부모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물론 선데이 콜 외에도 소통을 위한 여러 방식이 있다. 새 학기 시작 후 학부모를 상대로 교사들이 교과 운영에 대한 파워포인트(PPT)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도 한 예다.

한국에서는 유난히 학교와 학부모의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학교폭력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학교 측이 먼저 학부모에게 알리는 경우도 드물다. 자녀의 하소연이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겨우 소식을 접한 학부모들이 학교에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폐쇄적이고 답답한 소통은 교육당국도 마찬가지다. 졸지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라는 결정을 들은 학부모들은 “자세한 이유라도 알자”고 하소연한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문을 닫게 됐는데 교육당국은 이들이 원하는 정보를 속 시원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교육에 대한 학부모 신뢰를 얻기 위한 답은 단순하다. 정직한 소통이 그 시작이다.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선데이 콜#학교폭력#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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