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시론/안드레이 란코프]빈손으로 끝난 북-러 회담, 그럴 만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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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교류 확대 원하는 북한 요구에도 러, 北 제품에 관심 없어… 교역 감소
매년 10억달러 써야 北친구 된다는 농담도
6자회담 제안은 美中日 견제 차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이 별 소득 없이 끝났다는 것은 확실하다. 양측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않고 헤어졌다. 형식적으로 보면 하노이 회담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처음부터 기대가 많았던 반면 이번 회담은 관찰하는 이들 대부분의 기대가 처음부터 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러시아는 북한 문제에 영향을 줄 능력도 별로 많지 않았고, 의지는 더 약했다.

북-러 관계의 특징을 결정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양국의 무역 구조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현 단계에서 북-러 무역 확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유엔 제재를 지킬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 제재 완화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당분간 북-러 무역의 전망은 어둡다.

하지만 북-러 경제 교류에서 대북제재가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설령 내일 갑자기 제재가 사라져도 상황은 많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해외에 잘 수출할 수 있는 물품들은 러시아에선 아예 수요가 없다. 북한의 핵심 수출품은 광물과 수산물인데 러시아는 지하자원이 많고 수산물에 별 관심이 없다. 북한이 수출할 수 있는 항목 중 러시아가 관심 있는 것은 파견노동자뿐이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에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이 많지만 외화난이 심각한 북한은 국제가격으로 러시아의 수출품을 살 능력이 없다. 러시아 회사들은 국제가격이 아니라면 무역을 할 생각이 없다. 당연히 러시아 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의 방북 때부터 북-러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무역량을 늘리자는 이야기는 계속 나왔다. 특히 2014년 극동개발장관 알렉산드르 갈루시카는 2020년까지 북-러 무역량을 당시 1억3000만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7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그의 주장에 언론은 큰 관심을 보였고, 러시아는 다시 한 번 북한 문제의 ‘기본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보도가 많았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아예 근거가 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벌써 5년이 지났다. 북-러 무역은 7배 늘어나는 대신에 2014년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북한의 러시아 수출은 200만 달러, 믿기 어려울 만큼 적다. 자메이카의 대러 수출량은 이보다 30배 이상 많다. 대북제재의 영향이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구조적 문제들이다. 1980년대 말까지 옛 소련 시대에 북한과의 무역량이 수십억 달러에 달했던 유일한 이유는 당시 모스크바의 지정학적 고려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러시아가 다시 옛날처럼 강대국의 위신과 영향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북한과의 무역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틀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별로 없다. 당연히 대북 투자나 대북 지원 필요성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합리주의적인 정책이다. 얼마 전 내가 아는 한 러시아 관리는 “러시아는 지금 북한의 친구가 아닌데 북한과 친구가 되려면 매년 10억 달러를 써야 한다”고 반(半)농담처럼 말했다. 이 말은 러시아가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 준다. 러시아가 북한 및 향후 한반도의 미래에 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매년 10억 달러라는 큰돈을 오랫동안 지출한다면 합리적인 선택일까.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부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의 지원이 없는, 순수한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북-러 경제 교류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히 강대국인 러시아는 향후 동북아의 모습을 결정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동시에 이 목적을 가능한 한 값싸게 달성하고 싶은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6자회담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러시아 입장에서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회담은 좋은 대안이다. 다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대체로 비슷한 영향력과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매우 값싼 돈을 쓰면서도,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다자회담이 아니라면 동북아 관련 정책은 거의 다 워싱턴이나 베이징에서 결정될 것이다. 러시아의 대외정책은 여전히 옛 소련 지역과 유럽, 중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에 동북아시아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지역이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확인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북러 정상회담#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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