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길진균]기로에 선 마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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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은 자유 평등 박애가 표상하는 프랑스적 가치를 의인화한 여성이다.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선 오른손에 삼색기, 왼손에 총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 벽면에 있는 마리안 상(像)이 ‘노란 조끼’ 시위대에 의해 1일 파괴된 사건은 그동안 프랑스인들의 사상적 기저로 통했던 톨레랑스(관용) 정신의 퇴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유류세 인상이 뇌관이 됐지만 ‘노란 조끼’ 시위는 개혁의 혜택을 아직까지 체감하지 못한 ‘잊혀진 중산층’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게 프랑스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비용 저효율로 상징되는 ‘프랑스병(病)’ 치유를 앞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추진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는 부자와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율을 인하했다.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동법도 개정했다. 내년엔 연금 혜택을 축소하는 연금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부분 정책이 그렇듯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실업률은 9%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유권자의 고른 지지를 받았던 마크롱은 어느새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몰렸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4일 사설에서 “(마크롱의) 오만함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이 위기를 고착화했다”고 했다. 유럽 언론들은 프랑스의 고질적인 복지 편중과 개혁 부재를 바꿔보려는 마크롱의 방향은 옳지만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3일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80세 여성이 얼굴에 최루탄을 맞아 숨지는 등 ‘노란 조끼’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4명에 이르렀다. 20%대로 떨어진 마크롱의 지지율은 바닥 없이 추락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6개월 유예하기로 했지만 마크롱은 국가의 미래를 보고 가겠다는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해야 할 일을 한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남을까. 마크롱의 임기는 2022년 5월까지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마리안#프랑스#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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