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주성원]백화점의 남성 ‘큰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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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중년 사내들 사이의 캠핑 붐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일단 장비가 죽인다. 준비해야 하는 장비의 종류가 장난이 아니다. 그 모든 장비를 챙겨 차에 싣고 캠핑장에서 설치하는 모든 과정이 그렇게 폼 날 수가 없다.” 불을 피우고 육체노동에 몰두하다 보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수컷’의 느낌이 충만해진다고 했다.

▷모처럼의 수컷 느낌을 죽일 순 없다. 캠핑용품도 명품으로 장만하자면 300만∼400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 어디 캠핑뿐이랴. 오디오, 사진, 오토바이, 요리…. 남자들의 취미생활엔 돈도 많이 들어간다. 백화점 생활용품 코너엔 여자들은 무거워서 들기도 어려운 주물 프라이팬이나 무쇠 냄비 같은 남자의 장비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도구로 가득하다. 토끼 같은 아이들, 여우 같은 아내를 위해 ‘돈 버는 기계’처럼 일해 온 한국 남자들이 달라졌다.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건 일종의 남성 해방 선언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달 출시한 남성전용 제휴 신용카드의 첫 달 매출 실적이 1인당 300만 원이다. 기존 백화점 제휴 카드의 6배. 주로 명품과 의류, 생활용품에 썼다. 여성들이 명품과 생활, 식품에 쓴 데 비해 남성이 오히려 의류를 많이 샀다. 신세계 측은 사용자의 74%가 30, 40대라며 “결혼이 늦어지거나 혼자 사는 비중이 커진 것도 남성 고객이 늘어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젊고(Young) 도시(Urban)에 사는 남성(Male)을 가리키는 여미족(Yummies)의 등장이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고급 스포츠카를 몰 때 상승하고,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떨어진다. 결혼 연령이 늦춰지면서 여미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다. 남자의 쇼핑은 테스토스테론을 유지하는 행위일 수 있다. 남자의 옷이나 생활용품을 대신 사주던 여자들로선 남자의 독립에 살짝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문화심리학자#캠핑#여미족#테스토스테론#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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