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프랑스가 ‘영웅’을 기억하는 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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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지난달 26일 아침, 줄리(40)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트레베에 있는 ‘슈퍼-U’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꽃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는 나를 살리고 죽었어요.”

사흘 전, 줄리는 오전 8시 반경 평소대로 이 슈퍼마켓에 출근했다. 생후 2년 6개월 된 딸과 함께 사는 줄리는 1년 전부터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40분경 20대 남성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뛰어들어 왔다. 손에는 총과 칼을 들고 있었다. 줄리는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랐다. 목 뒤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7.65mm 구경 권총이었다. 인질로 붙잡힌 그녀의 눈앞에 한 손님과 정육 담당 동료가 이미 총에 맞아 숨져 있었다. 그렇게 공포의 시간, 45분이 흘렀다. 그런데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범인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한 경찰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풀어줬다.

아르노 벨트람 중령. 그는 3시간 동안 붙잡혀 있다가 결국 총에 맞고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벨트람은 슈퍼마켓 안에 들어가며 이미 죽음을 예감했을지 모른다.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범들은 대체로 경찰에 극도의 적개심을 보인다. 슈퍼마켓에 오는 도중 조깅하던 경찰에게 무작정 총을 쏜 이 인질범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지키려고 스스로 죽음의 길로 뛰어든 벨트람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가 이 영웅을 기억하고 대접하는 방식은 기자를 또 한 번 감동시켰다.

유가족은 울지 않았다. 벨트람의 어머니는 “내 아들의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았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 여러 번 처한 적이 있다. 수동적으로 있거나 남에게 맡길 내 아들이 아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벨트람은 2005년 이라크전 당시 납치 직전의 프랑스 여성을 극적으로 구출하는 등 목숨을 건 비밀작전을 수차례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는 인류애와 공동체 가치를 지키는 데 엄격했다. 벨트람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한 정치인은 곧바로 테러방지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달 28일 그의 ‘국가장’이 엄수됐다. 벨트람의 관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프랑스 위인들이 묻힌 팡테옹을 출발해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군사기념 시설 앵발리드로 향했다.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그 행렬을 지켜봤다. 주요 TV 채널은 이 장면을 생중계했고, 모든 신문은 며칠째 1면으로 그를 기렸다.

앵발리드 광장에는 우파 공화당 출신 니콜라 사르코지, 좌파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올랑드 두 전직 대통령이 참석했다. 극좌 장뤼크 멜랑숑부터 극우 마린 르펜까지 모든 정당 지도자가 함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그의 관에 올려놓았다. 대통령도, 시민들도, 좌우 정치인들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영웅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요란하진 않지만 모두 함께 진심으로 영웅을 기억하는 프랑스 사회를 보면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죽음으로 줄리의 생명을 구하는 제2, 제3의 벨트람이 또 나올 것이라는.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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