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대의 모바일 칼럼]“시진핑 思想? 그게 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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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시진핑(習近平) 사상이 24일 중국 공산당의 헌법인 당 장정(章程)에 공식적으로 올라갔다.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는 이날 폐막 직전 회의를 열고 시진핑 당 총서기의 ‘치국이정(治國理政·국가통치)’ 방침을 당장(黨章)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시진핑 사상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과 덩샤오핑(鄧小平) 이론과 똑같은 반열에 올랐다.
●‘인민의 머리’를 지배하는 자가 진짜 최고지도자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인민의 머리, 즉 사상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 헌법보다 중요한 공산당의 헌법, 당 장정의 지도이념을 지극히 중시한다. 수정 전 당장은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저뚱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사상과 과학발전관을 자기의 행동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돼 있었다. 이날 당장 수정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이념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포함해 총 6개로 늘었다.

하지만 지도이념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시진핑이 이번에 당장에 올린 자신의 사상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붙은 사상이다. 이는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시진핑 개인의 고유사상이라는 얘기다. 만약에 시진핑의 이름이 붙지 않았다면 이는 덩샤오핑이 주창한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신시대’라는 수식어구만 추가한 사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시진핑을 핵심으로 한 현 지도부가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창안해낸 새로운 사상이라는 뜻이다.

●집권 5년 만에 자신의 사상을 당장 삽입, 역사상 전무

마오저뚱 사상은 1945년에야 당장에 올랐다. 당장에 올리자는 주장을 마오 스스로 10년이나 반대했기 때문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의 이론도 1997년 사후에야 이뤄졌다.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3개 대표론’을 당장에 올린 장쩌민(江澤民)은 보수파의 반발로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2007년 당장에 올린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 역시 마찬가지다. 임기 5년 만에 시진핑이 자신의 이름까지 붙여 하나의 새로운 사상을 당장에 올렸으니 이는 공산당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

물론 시진핑 사상을 시진핑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3개 대표론’이나 ‘과학발전관’ 역시 모두 당 중앙정치국 위원인 왕후닝(王滬寧)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머리에서 나왔다. 시진핑의 사상도 왕후닝의 지도 아래 린샹린(林尙立) 중앙정책연구실비서장과 중앙당교의 부교장을 맡았던 리수레이(李書磊)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가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결혼자금까지 털어 책을 사는 바람에 약혼녀에게 혼났던 책벌레 왕후닝이 없었다면 최고지도자마다 사상을 만들어내는 중국의 전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5位1體와 4개 全面

“시진핑 사상의 요체가 뭐냐”라고 물으면 중국인 학자들도 갸우뚱한다. 아직은 명확한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최대 종합검색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 들어가도 ‘시진핑 사상’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진핑 사상에 대한 수식어구는 엄청 많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19일 열린 당 대회 성(省)별 대표단 토론자리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최신 성과이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이론 체계의 중요 구성 부분”이라고 말했다. 리 총리는 “시진핑 신시대 사상이 앞으로 중국 공산당이 오랫동안 지켜나가야 할, 당의 지도사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걸까. 시진핑은 18일 열린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2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했다.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란 ‘(덩샤오핑이 주창한)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을 명확히 하면서 사회주의 현대화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총체적 임무로 하는 사상으로, ‘5위1체’와 ‘4개 전면’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5위1체’란 빈곤 탈피를 위한 경제발전 뿐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생태문명(환경보호) 등 5가지 분야가 동시에 종합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4개 전면’이란 ‘샤오캉(小康·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사회)’의 실현과 개혁의 심화, 법치(依法治國·의법치국), 부패 방지(從嚴治黨·종엄치당)라는 4가지 핵심 과제를 확실하게 실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 주석 사상 “중국 현대화 목표의 사상적 완결”

하지만 이것만으로 시진핑 사상의 핵심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마치 현재 중국 정부가 당면한 핵심과제와 목표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새로운 사상이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친 정부 성향의 중국학자들에 따르면 시진핑 사상의 핵심은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일본의 반(半)식민지사회였던 중국을 구하고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계획경제를 실시해 처음엔 뭔가 잘 나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 계획경제의 늪에 빠져 중국을 30년 뒤로 후퇴시켰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사회주의 정치제도 밑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결합시켰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 어느 국가도 해보지 않은 ‘중국특색 사회주의’ 노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선부론(先富論)으로 무장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통해 20여 년 만에 사회주의 현대화 목표의 첫 단계인 원바오(溫飽) 단계를 2000년대 초반 달성할 수 있었다.

중국의 사회주의 현대화 목표는 3단계 전략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원바오 단계(1인당 GDP 약 1000달러 안팎)를 지나 나름대로 먹고 살만한 샤오캉 사회(1인당 GDP 1만 달러 안팎)를 거쳐 현재 서구사회의 비슷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1인당 GDP 5만 달러 안팎) 실현을 목표로 한다. 샤오캉 사회는 중국 공산당 건설 100주년인 2021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는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실현하는 게 목표다.

마오가 사회주의 중국의 건설 등 중국인을 서게 만드는(站起來) 사상을 제시했다면, 덩샤오핑은 경제발전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거는(富起來) 사상을 제창했고, 이제는 중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들어야 하는(强起來) 시기의 사상이 필요한데 시진핑 사상은 바로 중
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는 데 가장 올바른 노선과 정책을
제시한 사상이라는 주장이다.

시 총서기가 18일 3만1900자에 이르는 당 대회 업무 보고를 3시간 24분간 낭독하면서 가장 많이 외친 것은 ‘중국특색 사회주의’로 무려 69차례였다. 다음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32차례나 됐다. 이들 학자들은 1949년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후 첫 30년은 마오의 사상이, 1979년 이후 30년은 덩의 사상이 지배했으며, 2009년 이후 30년은 시진핑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 모방의 시대 끝났다” 선언

덩샤오핑이나 시진핑 모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두 사람의 사상 사이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를 시인하고, 서구의 여러 제도를 하나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면, 시진핑은 중국 발전의 역사에서 이제 더 이상 서구의 제도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시진핑이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중국 공산당이 제시한 노선과 이론, 제도, 문화라는 4가지 측면에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강조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시진핑은 서구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 제도 역시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만 해도 중국의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서구 정치제도로 바꿔야 한다는 말부터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지금은 중국 특유의 정치제도를 바꿀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아직은 전 세계 GDP의 15%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GDP 증가 총량의 30%를 차지해 증가분 비중에서 미국을 앞지른 중국은 경제적 성과를 토대로 사상, 제도,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시진핑이 말하는 강군몽(强軍夢) 역시 2049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반드시 확보해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 목표다. 한 마디로 21세기 중엽까지 경제, 군사, 정치, 사상,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1위의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자 ‘중국의 꿈’이며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의 목표다.

●‘중국의 꿈’ 목표대로 이뤄질까

‘중국몽(中國夢)’이 목표대로 달성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약 1만10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8300달러 수준이어서 모방을 통한 고속성장이 가능했지만 평균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고 한다. 즉 중앙의 통제와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현재 중국의 정치체제로는 혁신 성장을 가능케 하는 14억 중국 인민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또한 그동안 예측에 실패해온 중국 붕괴론이나 중국 위험론의 한 갈래일 수 있다.

어쨌든 중국 공산당은 누구도 걷지 않은 자국만의 독특한 사상과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과 더불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성과를 이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기초로 자신감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21세기 중엽까지 중국을 세계 최강의 일류국가로까지 이끌 지름길이 될지는 이제 세계 75억 인구와 인류역사의 핵심 관심사가 됐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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