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저균 반입, 미 국방장관 사과로 그칠 일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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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그제 싱가포르에서 가진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송된 사건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미국 정부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카터 장관이 사과했다고 미국이 한국에 사전 통보 없이 탄저균을 반입한 것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미군이 탄저균을 비롯해 한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 물질을 반입하는 문제에 대해 짚고 갈 것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주한미군사령부는 “탄저균 표본 실험은 처음이었고 독극물과 병원균 식별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산기지에서 북한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한 실험과 훈련을 비밀리에 했을 개연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군은 축소와 은폐 의혹이 제기되지 않도록 명확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 미국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잘못 배송한 지역이 오산기지를 포함해 미국 9개 주, 18개 시설에서 11개 주, 24개 시설로 늘어나면서 미국 내에서도 허술한 관리에 대한 비판이 높다. 한국도 주권국으로서 주한미군의 위험한 활동을 철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주한미군이 위험 물질을 반입할 때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은 반입한 탄저균 표본이 비활성화 상태인 줄 알았기 때문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한미군은 이 표본을 국제 택배회사인 페덱스를 통해 받았다. 하지만 SOFA는 미군에 탁송된 군사 화물에 대해서는 세관 검사를 하지 않아 정부는 미군이 임의로 위험 물질을 들여오더라도 알려주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한미가 이번에 긴급 가동한 SOFA 합동위에서 진상 조사를 하는 것과 별개로 SOFA 규정 자체에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탄저균은 100kg을 살포하면 최대 30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북한이 보유한 5000t의 생화학무기에도 탄저균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탄저균이 우리 정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입된다면 한미동맹이 건강하게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탄저균 이외에 다른 생화학무기의 원료도 국내 반입 여부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탄저균#카터#사과#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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