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배려는 품격 사회로 가는 길잡이

동아일보 입력 2015-01-12 03:00수정 2015-01-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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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요즘 신세대들에겐 지하철과 버스의 경로석이란 “경건하게 앉아서 노인을 생각하는 자리”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 노인이 앉으실 수도 있는 자리”란다. 단순한 말장난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시면 누군가는 꼭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드리던 훈훈한 정경을 떠올리자니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고령화 덕분에 주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넘쳐나건만 정작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손자 세대는 어르신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 ‘개념’도 없고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최근 여론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는 ‘백화점 모녀’의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에 대한 폭언 및 폭행 사건이나 택배를 찾아가라는 몇 차례 전화에 30대 입주민이 60대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은 인간관계의 기본이라 할 예의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째로 상실한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더더욱 씁쓸함이 밀려온다.

1972년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R 세넷과 J 코브가 출판한 ‘계급체계 속 숨겨진 희생자’엔 오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세넷과 코브의 주장인즉, 계급과 인종에 따라 불평등을 공고히 구축해가는 현대사회에선 불평등 사다리의 아래쪽에 자리할수록 경제적 빈곤과 물질적 궁핍이란 고통에 더해 의당 누려야 할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상처와 기본적 ‘존중’조차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야말로 물질적 궁핍으로 인한 고통의 크기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지목하면서 세넷과 코브는 “숨겨진 희생자”의 존재를 부각시켰던 것이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뿌리내리기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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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넷과 코브의 혜안은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엔 오히려 희생도 감수하고 양보를 미덕으로 삼았던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었건만 오히려 선진국 문턱에 서고 보니 천박한 물질주의가 난무하고 안하무인의 이기주의가 팽배해가는 한국 사회를 향해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듯하다.

물론 주위의 타인을 배려하고 혜택 받지 못한 약자를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은 단시간에 습득 가능한 스킬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돼야 하는 기질이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깊숙이 스며들어야 하는 문화임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예전 세대는 확대가족 안에서 대여섯 명씩 되는 형제자매들 틈에서 번성한 친인척과 교류하면서 배려의 미덕과 존중의 가치를 생생하게 체험했던 것 같다. 가족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구성원의 인격을 키우는 것임을, 추상적 글이 아닌 구체적 체험을 통해 공감해온 우리 아니던가.

다만 우리네 배려문화에도 반성할 점이 있었기에, 우리 편끼리는 깍듯한 예의도 지키고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 대신 낯선 이들을 향해선 무례함을 일삼고 배타적 적의를 보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젠 친숙한 ‘우리’끼리보다 낯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밥상머리 교육의 아름다운 전통도 되살려내고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던 골목의 기억도 되짚어내어 낯모르는 타인들이야말로 진정 어린 배려의 대상이요, 사회적 약자인 그들이 바로 진심 어린 존중의 대상임을 되새겨 볼 일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이들을 향한 배려와 존중이 일상화된 사회야말로 진정 우리가 원하는 성숙하고도 품격 있는 사회 아니겠는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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