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가 누군줄 알아” 외친 甲, 2014년이 告한다 “너 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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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리턴’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어제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2014년 세밑을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재벌가(家)와 대기업, 공직자들의 갑(甲)질이다. 사무장에게 “너 내려”라고 명령해 승객 250명이 탄 비행기를 되돌린 조 전 부사장, 오너 3세의 비행 은폐에 급급한 대한항공에 국민은 분노했다. 국토교통부 공무원들과 대한항공이 유착된 ‘부패의 사슬’까지 드러난 것은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돌아보면 올해에는 유난히 갑질 논란이 많았다. 여야와 민관도 따로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초선 비례대표인 김현 의원은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의 대리운전기사 폭행 때 “내가 누군 줄 알아?” 으름장을 놓아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 정보와 전문성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고는 자기들만 피신해 참사를 키웠다.

공직자들이 모피아(기획재정부) 해피아(해양수산부) 금피아(금융기관)로 끼리끼리 뭉쳐 공직을 사익 추구에 이용해온 한심한 민낯도 드러났다. 6개 TV 홈쇼핑 전체가 말단 직원부터 대표이사까지 납품업체들로부터 뒷돈을 챙겼다. 서울대의 스타 교수가 대학원생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하는가 하면,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에게 폭언과 모욕을 퍼부어 목숨을 끊게 했다. 갑은 을에게, 을은 병에게, 지위의 높낮이나 권력의 다과(多寡)에 관계없이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관행이 전염병처럼 퍼진 듯하다.

자율성과 다원성을 원리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번영한다. 돈이나 권력을 좀 더 가진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갑질을 일상화하는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충(忠)은 백성에 대한 의리”라던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이 1760만 관객을 모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칭송받은 배경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환멸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2014년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를 보내며 참된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사회 지도층부터 곱씹어보기 바란다.
#땅콩회항#조현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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