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시킨 ‘의리 국회’ 부끄럽지 않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국회의원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를 팽개치고 있다고 비난하며 ‘보수 혁신’을 외치던 새누리당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동료 의원을 질퍽한 의리로 감싸 불체포 특권을 누리게 해주었다.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무기명 자유투표라 누가 찬성 또는 반대했는지 알 수 없으나 223명 투표에 찬성 73표, 반대 118표인 것으로 미루어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중 일부도 반대에 동참한 것으로 짐작된다. 겉으로는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맞서면서도 익명에 숨어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제 식구 감싸기 본성을 드러낸 형국이다.

체포동의안 부결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의원 각자가 판단한 문제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 것은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무책임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오면 원칙대로 처리하겠다” “비리 의원을 감싸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이 무색하다. 그런 다짐이 고작 의원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나. 변화와 혁신을 내걸고 대표에 당선됐으면 적어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소속 의원에 대해서는 당 전체가 단호하게 선을 긋도록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다.

여야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 쇄신 차원에서 헌법상 권리인 불체포특권의 포기를 약속했지만 결국 빈말이었음이 다시 확인됐다. 제헌국회부터 어제까지 국회에 제출된 의원 체포동의안 56건 중 가결된 것은 19건에 불과하다. 새정치연합은 지난달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기 당 소속의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을 보호하겠다고 ‘방탄국회’용으로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들이 여론의 비판에 밀려 자진 출두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앞으로 국회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잠시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 일로 금배지 특권 지키기에는 여야가 동업자임이 각인되고 말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식물국회가 추석 이후까지 이어질 듯하다.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국가 대혁신에 필요한 100여 건의 법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국회가 ‘혁신’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의 실망과 지탄 같은 후폭풍이 두렵지도 않은가.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새누리당#철피아#의리#송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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