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80>우편 4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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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 4
―장이지(1976∼ )

내 간지러운 사춘기의 후미진 길목에는
지천으로 번진 채송화의 요염한 붉은빛 따라
남몰래 같은 학교 남학생을 쫓아다니던
축축한 꿈도 있지요만

그 기분 나쁜 미행의 꼬리를
나무라지 않은 안경잡이의 그 넉넉한 마음과도
아쉽게 갈라서버리고
실은 안경잡이의 쌍둥이 누나를 혼자 좋아했는데

안경잡이의 누나는 매정했고
나는 유서를 쓰고 죽는다든지
안경잡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파국의 장면 같은 것을 부질없이 준비했으나

시간은 늙어서 자연이 되고
쌍둥이 남매를 뒤쫓던 학교 앞 공지
공지 담장 위로 오르내리던 남매의 머리끝 같은 것의
리듬이 자아내는 파국 없는 애상을 종종 불러내어

내 현실의 때 묻은 창을 좀 투명하게 하고
가문 하늘에 비구름도 좀 보태어주고 해오던 것인데
그 자연사의 폐허에 서 있지 않고는
삶에 대해, 옅어진 삶에 대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으리라고.

오늘은 내 자신 수취인 없는 개인적 기록으로
빛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세속도시를 지우고.


애티가 사라지고 그 곱던 얼굴에 여드름이 돋아난다. 몸처럼 마음도 한창 자라느라 활화산처럼 불안하다. 어떻게든 튀려 하거나 극심한 권태에 가라앉는다. 숙제를 발표할 때도 급우들을 웃기지 못하면 실패라 여기고, 한편 비극적 ‘파국의 장면’ 주인공을 꿈꾼다. 미처 경험 못한 사랑의 욕구가 끓어 넘치니 동성에게도 끌리고 이성에게도 끌리는데, 그 사랑은 대개 짝사랑으로 끝난다. 사랑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한 시기가 용모가 썩 아름답지 못한 시기와 겹치는 게 사춘기의 비애라지. 미숙하고 어색하고 불안정한 사춘기.

독자는 화자가 불러내는 사춘기의 ‘파국 없는 애상’에 함께 젖는다. 장이지 시인에게 있어 사춘기를 비롯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는 시간은 ‘현실의 때 묻은 창을 좀 투명하게’ 하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 매사 무덤덤한 것이 화자는 슬픈 것이다. ‘현실의 때’는 외부에 대해 보호기능을 하지만, 단절도 시킨다. 시인의 사춘기는 지난 세기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였을 테다. 컴퓨터가 친구인 지금 청소년이 어른이 되면 어떤 추억으로 ‘현실의 때’를 벗을까. 끝내 ‘삶에 대해, 옅어진 삶에 대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으리라’. 사춘기에도 삶이 옅었기에.

황인숙 시인
#장이지#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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