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인해]드레스덴 제안을 받은 김정은의 속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최우선 목표는 3대째 내려오는 세습체제의 공고화다.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위를 영구히 비워 두고 정통성을 세우고자 한다. 최근 여동생인 김여정은 장관급의 비서실장 격인 노동당 서기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백두혈통’의 순수성을 내세운다. 세습후계자의 지위로서는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를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김일성 일가의 지속적인 우상화를 위해서는 모든 대내외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는 ‘폐쇄사회’를 유지해야 한다.

또 다른 목표로는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이밥에 고깃국’을 인민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식량난과 소비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은 산업화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이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발전의 뒷받침이 돼야 할 사회간접시설은 미미하다. 외국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투명한 ‘개방정책’이 필수적이다.

김 제1위원장은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폐쇄사회’로 통제해야 하지만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는 ‘개방정책’을 펴야 하는 ‘체제 패러독스(system paradox)’를 안고 있다.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날고 있는 두 마리의 새를 동시에 잡으려 한다. 정권 보장의 안전판으로 핵국가로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대외경제 환경을 개선하여 경제개발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핵·경제 병진노선’은 김정은 체제의 생존전략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는 옛 소련에서 분리될 때 핵무기를 포기한 대가로 볼 수 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최후도 핵무장을 하지 않아 정권 수호에 실패한 사례로 교훈을 삼고 있을지 모른다.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경제협력의 상대국으로는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는 남한이 가장 마지막 순서일 수 있다.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남한을 배제하고 싶다는 의미다. 오히려 정권 붕괴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을 중국 러시아 심지어 일본 미국 서방국가들과 무역을 하고 경제 원조를 받고자 한다. 남한과는 개성공단 확대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통해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안전한 거래라고 여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드레스덴 구상은 3대 제안을 담고 있다.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북한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북한 생존전략의 걸림돌은 비핵화 요구와 5·24조치다. 천안함 폭침을 사죄하라며 내린 5·24조치로 인해 남북한 관계는 단절되다시피 했다. 드레스덴 연설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으로 포탄 500여 발을 쏘아댔다. 이 가운데 100여 발은 NLL 이남 수역으로 날아왔다. 이에 남측은 3배에 달하는 300여 발로 응수했다. 더 이상 사태 진전은 없지만 엄중한 정세다. 북한은 4차 핵실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핵국가 지위를 인정받아 체제 보장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북한의 핵무장 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통일의 상징적 인물로 유럽에서 최강국인 독일을 이끄는 롤 모델이 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동독이 무너질 때 쫓겨난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은 김 제1위원장에겐 악몽일 것이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의 전쟁억지력을 내세우며 정권안정을 위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것에 한국이 도움이 된다고 상대방이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신뢰’의 시발점이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평화통일 구상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4월은 잔인한 달을 예고한다. 백령도에서 전단 살포, 서해상 북한 어선 나포,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이어지고 있다. 김일성 주석 탄생을 기념하는 태양절(15일)과 북한군 창건 기념일(25일)이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돼야 따스함이 스며들 여지가 생길 것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를 발휘하려면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는 안목으로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ahnyinha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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