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현종]파리의 개선문, 평양의 개선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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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주유엔대사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주유엔대사
일본은 전쟁 이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외교를 하고 있다. 국가 목표를 설정한 후 외교적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세계 평화를 추진한다는 명분 아래 청일전쟁 때처럼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 무기 수출 금지 3원칙의 수정과 비핵 3원칙을 재검토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4800개를 제조할 수 있는 30t의 핵물질과 연료봉을 소유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아마도 납치된 일본인들을 구출한다는 명분을 앞세울 것이다. 보통국가로 간다는 명분 아래 일본 지도자들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함은 물론 민주주의도 함께 이뤄 낸 대한민국을 ‘한심한 국가’로,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여학생으로 비유하면서 ‘고자질 외교’를 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 한국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돼야 한다는 궤변을 미국한테 늘어놓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출범 당일에 일본 관료가 출범을 방해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하지 않기 때문에 FTA를 출범시키지 말라”고 미국 측에 고자질했다.

망언도 부족해서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다. 미국은 실망스럽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속내는 후텐마 미군 기지를 이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아베에게 너그러웠다. 워싱턴에서는 오히려 한일 간의 갈등은 한국이 역사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모호한 태도는 한일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 미국은 유감만 표명할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에 합사된 14명을 A급 전범으로 지목한 도쿄 전범재판 판결을 수용하는지 아베 총리에게 확답을 요구해야 된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는 야스쿠니와 달리 전쟁 범죄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명예 제대한 군인들만 안장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는 단재 신채호가 언급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 뜻을 깨닫지 못한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일본에 우리의 정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한국은 강제 성 노예제도 피해자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일본에 전달하고 중재 신청도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1년 판결문에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중재 신청을 않는 행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원폭 피해자들과 사할린에 끌려간 강제 징용자들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한편 전시작전권도 확보해야 한다. 전작권 반환을 연기해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5·24 조치와 남북 간의 긴장 관계가 완화되면 한반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논리가 약화된다.

대동사회를 이루려는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인식하여 북한과의 정상 거래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허약한 북한 경제체제의 역량을 키워 주고 있다. 영구적인 한반도 분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중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북한의 지도부는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도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농업과 경공업 분야에서 협동 소유권을 인정한 북한 체제는 대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반도 유사시에 투입되는 중국의 선양 군구가 백두산 지역에서 대규모 훈련을 했고, 마에하라 세이지 전 일본 외상은 집단적 자위권을 북한 유사시에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확인했다. 북한도 소용돌이치는 동북아시아의 흐름을 통찰력을 가지고 주시할 필요가 있다. 평양에 있는 개선문은 파리에 있는 개선문보다 크고 그 밑으로 차가 지나다닌다. 그러나 일본 차들은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민족 공조를 강조하는 북한은 박 대통령의 제안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제 큰 틀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북한과 물밑접촉도 해야 한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전 주유엔대사
#아베 신조#야스쿠니 신사 참배#강제 징용#위안부#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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