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순애]내년도 나라살림, 국회의 메스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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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14년 정부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갔다. 법적으로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도 법정 기한은커녕 연내 처리조차 불투명하다. 기획재정부는 12월 중순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전년도에 준하는 ‘준예산’을 짤 계획이라고 한다. ‘준예산’은 정부의 기능 정지를 막기 위한 필수 예산을 담고 있다.

정부예산은 1년간의 세입, 세출 규모와 그 명세에 대한 계획이다. 재정학자 앨런 시크는 ‘계획된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자금 지출을 체계적으로 연관시키는 과정’으로 예산을 정의하고 있다. 즉, 정부예산은 단순한 가계부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생산과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예산 규모와 재원 조달 방법, 공공 수요와 민간 수요의 배분 비율, 그리고 국민 계층 간 조세부담률에 관한 의사결정이 들어 있다. 숫자로 쓴 국정 철학이다.

국가재정법 제16조는 예산 원칙으로 재정건전성 확보와 국민 부담 최소화, 그리고 재정 지출의 성과 제고를 명시하고 있다. 올해 예산안의 골자는 건전 재정기반 확충과 경제 활력 회복 및 일자리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거시적인 목표 면에서는 예산 원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총지출 357조7000억 원은 전년 추경 대비 2.5% 늘었으나 재정 지출 증가율로 보면 4년 만에 최저 수준이며,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관리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분야별 사업예산, 즉 각론으로 내려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14년도 예산안 분야별 분석’ 보고서는 사업 간 중복 지원과 효과가 모호한 사업 등으로 인해 여전히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업 간 정책 효과가 상충되는 예산 편성 사례도 있고, 단지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정책이나 사업계획의 수립도 없이 예산 증액부터 해준 사례도 발견된다.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도입한 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부처에서 제출한 성과계획서에는 여전히 건수 위주의 투입지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4년 예산안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사업계획서이다. 따라서 국민과의 약속인 국정과제를 예산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략적·중장기적 시계(視界)와 성과 관점이 결여된 사업계획은 결국 정책 실패로 귀결될 소지가 크다. 더구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양적 목표에 치중하거나 단기적 부양 효과를 위한 대증적 처방과 전시성 사업들로는 더이상 국민의 요구와 기대수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상회할 만큼 대외의존도가 높다. 세계경제의 위험 요인과 불확실성도 아직 곳곳에 상존한다. 여기에 공공기관을 포함한 국가부채 비율이 GDP의 75%에 육박하고 있으며, 900조 원을 상회하는 가계부채와 사회적 양극화 심화 등 국내 경제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경을 초월한 기업 활동과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증세 없는 복지의 확충도 우리가 당면한 과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민의 혈세가 어디서 새고 있는지, 불요불급하거나 경제성 없는 사업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보다 효율적인 사업 추진 방법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점검하는 일이 국회의 책무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정파적인 이해를 떠나 예산안을 다시 들여다보고 낭비적 요소를 제거해 예산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밤을 새워도 시간이 촉박하다. 정쟁으로 시간을 소모하기엔 위기의 징후는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우방이라 믿었던 미국도, 기회라 생각했던 중국도, 이웃으로 여겼던 일본도 위협을 가중시키는 환경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관료들의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를 사전에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국회가 국민을 담보로 쪽지예산을 주고받고, 관료와 야합하고, 제 지역구에 물대기 식의 편협한 시각으로 국가예산을 방만하게 편성한다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위기는 현실이 된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의 허리를 덜 휘게 하고 국민 행복을 증진해 줄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 비로소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 예산심의의 중요성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psoon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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