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마이너’ 국제대회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9일 03시 00분


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933억 원. 지난주 막을 내린 2013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에 들어간 예산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대회에 이처럼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부가 대책을 냈다. 내년부터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을 제외한 ‘마이너 국제대회’에 국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에 휘둘리지 않고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에는 다들 공감한다. 행사 후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기장, 박람회장이 전국에 수십 곳이다. 언젠가 끊어야 할 악순환의 고리다. 그런데 선뜻 박수를 보내기가 망설여진다.

기자는 대전 출신이다. 기자가 중학생 시절인 1993년을 전후해 대전을 들썩이게 한 ‘엑스포 특수’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동네 구불구불한 왕복 2차로 도로는 8차로 대로(大路)로,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구간은 6∼8차로로 넓어졌다. 악취가 진동하던 대전의 중심하천 갑천은 한강처럼 말끔히 정비됐다. 일반인은 접근조차 어려웠던 군부대(공군교육사령부) 터에는 엑스포장과 정부대전청사가 들어섰다.

서울이 국제도시로 거듭난 것도 상당부분 국제대회의 덕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559달러였던 1974년, 정부가 야심 차게 유치한 게 ‘마이너 국제대회’인 1978 세계사격선수권대회다. 워커힐아파트를 세우고 종로, 천호대로를 확장한 게 그 대회를 위해서다. 대회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이듬해 서울 올림픽 유치를 선언했다. 올림픽이 서울을, 아니 한국을 어떻게 바꿨는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앙 정부가 아무리 뜯어 말려도, 지자체가 국제대회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스스로가 수십 년간 보여준 가장 확실한 ‘발전 모델’이 바로 전시성 행사다. 엑스포, 겨울올림픽이 없었어도 전남 여수, 강원 평창에 KTX가 들어갈 수 있었을까. 정부는 메이저·마이너 대회를 차별하겠다지만 골칫거리로 전락한 경기장 상당수는 사실 메이저 대회의 흔적들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아무 대책 없이 “마이너대회 너희는 안 돼”라고 하는 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소모성 국제행사는 분명 막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지자체의 책임으로 돌리기 전에 정부가 할 일이 있다. ○○엑스포나 세계선수권대회를 끼지 않아도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고 재정도 튼튼해질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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