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경제민주화법의 성공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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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늘 새해가 되면 전년과는 다른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의 절반이 막 지난 시점에서 작년보다 나아졌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새 정부가 야심 찬 계획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아직 그 정책효과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살림이 나아졌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각종 연말공제가 줄어들 것이라는 소식에 직장인들은 결국 세금 부담이 커지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재벌과 공기업의 비리는 서민을 또다시 허탈하게 만들고 사회적 불신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사회는 온통 갑과 을의 불공정으로 얽혀 있고,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을 보면 이들이 과연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자신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인지 그 진심을 헤아리는 것조차 번거로워진다.

비리와 불법이 밝혀지면 국민의 분노가 들끓게 되지만 더이상 부패가 자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저 국민의 감정을 추스르고자 즉흥적으로 단기적 보완책을 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부나 국회는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엊그제 소위 경제민주화법안들의 국회 통과를 보면서 두 가지 서로 별개의 사안이 떠올랐다. 필자는 경제와 민주화라는 정치용어를 합성한 것이 타당한지 의구심이 든다.

첫째는 사외이사제도다. 1998년 이후 상장회사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사외이사를 두게 됐다. 그러나 시행 결과 기업총수가 실질적으로 사외이사를 임명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지와는 달리 고위 관료 출신이나 교수 등 기업의 로비에 도움을 줄 수 있거나 대주주가 챙겨줘야 할 사람을 위해 마련된 자리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난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예비후보가 포스코 사외이사를 지냈던 경력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두 번째 떠오르는 것은 소위 ‘강사법’이다. 대학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년 단위로 계약하여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급여 수준을 올리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1년 유예돼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인 이 제도에 이해당사자인 시간강사들과 대학들도 반대하고 있다. 현행 법률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계약강사는 1년 동안 6과목 정도를 강의하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계약을 하지 못한 다수의 강사는 그나마 시간강의마저 얻을 수도 없게 된다. 계약강사도 전임교수의 담당과목을 제외하면 자신의 세부전공에 맞는 과목들을 배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전공과 거리가 먼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계약하지 못한 다수의 강사나 계약강사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제도하에서 강의의 질이 높아질 리가 없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제도 변화가 기대한 결과는커녕 근본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법안들도 과연 얼마나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경제민주화법안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뒷받침될 때 그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재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규제가 없다면 이번 법안들은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재벌의 속성에 의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다음 국회에서 재벌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선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더욱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로 인해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이 재벌의 불공정한 행위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재벌의 근본적인 구조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번에 통과된 경제민주화 법률들이 공정하지 못한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도구로 이용되거나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게 된다.

사외이사제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악용하는 경우가 있고, 강사법에서 우려되는 바와 같이 정책 대상자들에게 전혀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법률로 현상적 문제를 해결하려 급급했을 뿐 그 근저에 무엇이 문제의 출발점이며, 새로운 제도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불공정 행위나 비리가 저질러질 수 있는 재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재벌 자체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법률로 근본적인 개선방향을 제시한다는 선의적 의지에서 출발한다면 상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정치경쟁을 넘어 국가발전을 위한 국회의 진지한 고민을 기대해 본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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