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예나]불협화음 ‘원세훈 수사’… 일부 강경파의 언론플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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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사회부 기자
최예나 사회부 기자
검찰이 11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정치권 공방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법 위반 사범을 불구속 기소한 건 황교안 법무장관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며 황 장관의 사퇴와 국정조사 조기 실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도 이번 갈등이 ‘황 장관으로 대표되는 정권 상층부와 일선 수사팀이 충돌한 권력의 외압 사건’이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번 갈등을 ‘황 장관 vs 일선 수사팀’의 대립이었다고 규정하는 건 무리다. 선거법 적용 여부에 대해 검찰 내에서 다른 의견이 있었고, 논쟁이 치열했던 건 사실이다. 원 전 원장이 선거 개입을 지시한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벌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수사팀 내 온건파는 ‘선거법을 적용해 기소하면 나중에 무죄가 선고될 거고, 검찰이 무리해서 수사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고 강경파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여지가 있다면 엄히 처벌해야 하고, 선거법을 적용하지 않으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두 개의 의견을 보고받은 황 장관은 검찰에 ‘선거법은 법리 검토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수준의 의견을 전했다. 대립하는 두 의견 사이에서 장관이 한쪽 편을 든 모양새가 됐고 이는 오해의 불씨가 된 게 사실이지만 외압으로 규정할 만큼 노골적인 수사 개입은 아니었다.

법리 적용을 놓고 의견 충돌이 벌어지는 것은 검찰 내에서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어찌 보면 건강한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의견 차는 내부 토론을 거쳐 조율된다. 그러나 그런 의견 조율 과정이 ‘수사팀 vs 정권을 보위하려는 법무장관’의 대립으로까지 비치게 된 건 일부 수사팀원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 한 것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언론 공식 창구는 서울지검 2차장이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다른 주장들이 흘러나왔다. 일부 강경파는 온건론에 가까운 2차장을 거치지 않고 “선거법 적용이 불가피하다”며 자신들의 의견이 수사팀 전체의 것인 양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검찰 수뇌부의 문제도 지적된다.

이번 수사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없어진 뒤 특수-공안 검사들의 연합팀이 진행했다. 앞으로도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될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구성될 팀이 내부에선 치열하게 논쟁해도 외부에는 단일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결국 이번처럼 엉뚱한 불협화음이 일어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검찰은 전 정권 사정(司正) 성격의 여러 대형 수사를 동시에 지휘하고 있다. 원전비리, 원 전 원장 개인 비리, 4대강 담합 사건 등이다. 지금은 순항하고 있지만 결정 과정에서 이번 수사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각각의 수사 결과는 또 다시 정치 공방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최예나 사회부 기자 yena@donga.com
#기자의 눈#원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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