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한반도 프로세스’가 버려야 할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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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에게 방미(訪美) 성과를 설명하며 한국 안보에 대한 믿음을 준 것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미국의 확고한 동의와 지지를 받은 것을 앞세웠다. 개성공단 대화 제의는 성공적인 한미 정상회담을 발판 삼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첫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가 나섰지만 실상은 박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대화 제의다.

그런데도 북한은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대화 제의를 거부하며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주제넘게 떠벌였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말단 조직이다. 총국의 책임자도 아닌 대변인을 남한 대통령 공격수로 내세운 북한의 속셈이 무엇일까. 북한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길길이 뛰었을 것이다.

개성공단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서지 않는 한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통일부가 회담 제의를 폄훼한 데 대해 북한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놓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밖에 안 된다. 북한은 “(남한의) 현 정권을 상대해야 하는지, 상대해 해결될 것이 있는지를 검토 중에 있다”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의욕을 보이고 미국의 지지를 얻었다 해도 남북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서 교훈을 찾았으면 한다. 햇볕정책은 과정인 첫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시켰지만 목표인 남북 화해와 평화 정착에는 실패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햇볕정책의 행로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무오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창작품인 햇볕정책을 만들어진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는 햇볕정책에 관한 한 마치 중세시대 교황처럼 무오류권(無誤謬權)을 행사했다. 문제가 생겨도 참모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햇볕정책 수호에 몸을 바쳤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문제가 드러나면 수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이 대화 재개에 집착해 통일부를 들러리나 꼭두각시로 만들면 북한이 먼저 통일부를 우습게 본다.

둘째, 초지일관 대신 상황 적응이 필요하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기간에 서해 도발을 했는데도 햇볕정책을 고집했다. 남북 관계는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들어 놓은 틀에 상황을 억지로 맞추면 결과는 낭패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아시아에서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평화와 협력이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역내 국가들과 더욱 돈독한 신뢰를 쌓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일본 아베 정권의 역주행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취소하고 이달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정상회의도 포기했다. 상황에 따른 변화다. 일본에 한 일을 북한에 못할 이유가 없다.

셋째,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를 무시하고 대북(對北) 퍼 주기를 계속했다. 박 대통령이 주도한 대화 제의는 세 차례나 거부됐다. 북한의 반발을 예측하지 못해 헛발질을 계속하면 국민의 신뢰도 떨어진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신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최소한 5년을 내다보는 장기 목표이기에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과정으로서의 ‘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도중에 ‘프로그레스(진전)’가 쌓여야 한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프로세스만 강조하면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한반도 프로세스#박근혜 대통령#방미#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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