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 여직원 수사에 경찰 윗선 개입했나

  • 동아일보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간부가 경찰 상층부에서 이 사건에 부당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대선 직전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국정원법 위반 사건 수사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서울지방경찰청이 부당 개입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이 사건을 수사하다가 올해 2월 4일 송파경찰서로 전보됐다. 대선 관련 사건에 경찰 상부가 개입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사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의 의혹 제기여서 근거 없는 폭로라고는 보기 어렵다.

서울지방경찰청과 경찰청은 권 과장의 의혹 제기에 대해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반박했다. 수서경찰서가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하기 위해 요청한 78개의 키워드를 4개로 줄인 이유에 대해서는 신속한 수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청이 수사팀에 전화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취지로 주의를 촉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해 12월 16일 밤 서울지방경찰청이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고 “김 씨에게 혐의가 없다”는 내용의 첫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는 권 과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은 당시 “경찰이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3차 TV 토론이 끝난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경찰의 선거 개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했다.

경찰은 지난주 김 씨가 국정원의 정치 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이번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한 만큼 사건의 실체가 좀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권 과장이 제기한 의혹은 이와 별도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경찰 상층부의 ‘부당한 수사 개입’ 의혹 제기를 보도자료 몇 줄로 해소할 수는 없다.

경찰은 조직 전체의 신뢰가 걸린 이 문제의 진위를 가려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경찰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거짓 해명하는 수준이라면 수사권 독립을 요구할 자격도 없다. 경찰이 의혹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개입하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 검찰 조사가 종료되면 국정조사도 예정돼 있다. 경찰은 어물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여직원 수사#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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