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프랑스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가 쓴 ‘파리를 생각한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걷기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 ‘플라느리(flanerie)’다.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도시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고 그때그때의 기분과 호기심에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기는 걸음걸이다. 플라느리를 즐기는 ‘플라뇌르(flaneur)’가 되어 걸을 때만이 그 도시의 구석구석에 숨은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봄을 맞은 도시에서는 이런 걸음걸이가 제격이다. 3월 초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30분 일찍 집을 나서면서 내게도 출근길 걷기의 여유가 주어졌다.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광화문까지 걷다 보면 청계천 공구상가 아침의 분주함, 물오른 나뭇가지 새순의 솜털까지 매일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머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발밑으로는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미묘한 긴장감과 여유가 교차하는 사색의 터널이다. 공구상가에서 불과 2∼3m 아래로 내려왔는데도 일순간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물소리가 들리는 공간.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곧 이어폰을 집어 던져버렸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버드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머릿속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을 보며 걷다 보면 순간적으로 눈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멍 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런 ‘멍 때림’을 “뇌가 휴식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뇌에게도 정보를 소화하고 배출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풍경의 변화도 알아채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정보의 과부하로 심각한 건망증에 시달린다.
‘피로사회’의 저자인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신작 ‘시간의 향기’를 펴냈다. 그는 스마트혁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 활용할 수 있게 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꼼짝 못하게 하며 일을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학자 몽테뉴가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걸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걸까’라는 유명한 회의주의 명제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요즘 사람들의 잠자리는 점점 편치 못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일의 시간이 휴가지까지, 잠자리까지 연장되기 때문이다. 일의 시간엔 향기가 없다. 한 교수는 빛처럼 날아가는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기 위해 일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뇌는 청개구리다. 뭔가 쓸모 있을 것 같은 일, 목적을 위한 시간에는 지루함을 느낀다. 반면 일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에는 뇌가 스스로 움직인다. 출근길 청계천을 걸으며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리라 다짐해본다. 혹시 아는가. 그 안에 멍 때리는 동안 나의 뇌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날아가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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