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평등의 문제는 휘발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내각 인선에 여성계의 불만이 심상치 않다.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임기 내 10만 명의 여성인재 풀을 확보하겠다고 다짐해 놓고, 막상 발표한 초대 내각 장관 내정자 17명 중 여성이 단 두 명뿐이니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이명박 정부의 13%(15명 중 2명), 노무현 정부의 21%(19명 중 4명)보다 비율이 낮아진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는 오히려 여성계의 이런 비판이 자꾸 숫자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여성 정책이 문제될 때마다 여성계는 2008년 109개국 중 26위에 오른 여성개발지수(GDI)처럼 우리나라가 상위권에 오른 통계 수치는 제외하고 하위권으로 기록된 여성권한척도(GEM)와 성별격차지수(GGI)만 거론해 왔다. 그러나 숫자와 현실은 다르다.
8일 여성의 날에 우리나라 여성계가 앞으로 이뤄야 할 과제들이 미국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 있었던 이야기라면서 여성들의 더 많은 권리를 주장했지만 미국보다 앞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현실은 주목하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여성의 전문직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애써 외면했다.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에서 20세기 들어 총리직을 세 번 연임한 최초의 인물인 마거릿 대처의 경우에도 초대 내각에 단 한 명의 여성 각료도 두지 않았다. 대처 역시 1952년 ‘선데이 그래픽’에 게재된 ‘여성이여, 눈을 떠라’라는 기고문에서 여성의 활동을 강조하였고, 대처 자신이 일과 가정 모두에서 성공한 여성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여성 해방운동’의 덕을 본 게 없다고 선언하며 남자들로 보좌진을 채웠다. 그렇지만 대처 총리 시절 영국의 여성 인권이 후퇴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장관 중 여성이 없다고, 여성계의 우려처럼 여성 인권이 과연 후퇴하는가.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영국 국민들은 대처 총리를 오히려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지난달 ‘지난 반세기 동안 8명의 영국 총리 중 누구를 최고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처가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여성계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균형 잡힌 관심보다는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권리 확보에 혈안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다른 가치들은 외면하고 양성 평등과 소수자 보호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운동을 위해서만 달리는 것 같다.
대학 시절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자처했던 여학생들 중에는 “여성도 당당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어야 한다”며 연로한 교수가 있건 말건, 비흡연자가 있건 말건, 대학 강의실 복도를 걸어다니며 담배를 피웠다. 이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오로지 마초이즘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러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안티 세력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여성운동에만 치우쳐 스승에 대한 예의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생각조차 안 하던 이들의 당시 모습이, 여성의 일방적 권리 옹호에만 매달린 현재 여성계의 모습과 겹치는 것은 나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다.
여성 장관과 여성 정책 및 사회적 약자 배려의 가치를 존중하는 장관은 다르다. 성별이 남성이라도 여성주의 가치를 존중할 수도 있는 것이며 여성 장관이라고 해서 다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여성의 역할 확대가 매우 중요한 과제이고,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로 여성 인재를 양성하고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여 점차 여성 고위 공직자의 비율이 늘어나도록 할 필요 또한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 각계에서 여성들이 눈부시게 활약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자연스럽게 여성 장관은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지금 여성 장관은 단 두 명뿐이지만 이들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여성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그 이상이다. 당장 여성 장관의 수가 늘어나면 여성계가 강조하는 여성권한척도 수치는 상승하겠지만 과연 실제 여성과 소수자들이 느끼는 현실이 바로 개선될지도 의문이다.
여성 정책의 실현에 있어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장관의 성별이 아니라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이 실제로 어떻게 변화하느냐이다. 장관의 성별만을 앞세우며 여성정책의 후퇴가 우려된다는 여성계의 비난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여성계가 더이상 숫자에만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계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한 건 이런 집착에서 비롯된 대중적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여성 장관이 늘어나기를 나 역시 희망하지만 숫자적 안배보다는 여성들의 능력 발휘에 의한 당연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으면 좋겠다. 대처가 많은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제시하고 설득했던 것처럼, 새로운 여성 대통령의 결단력 있는 내각 구성과 앞으로의 여성정책 추진을 기대해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