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 당선인, 핵 침묵하는 남북정상회담 하지 말기를

  • 동아일보

북한이 2009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통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이명박 대통령의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이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하기 전에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한 뒤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제1, 2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남한이 비선(秘線) 조직을 통해 먼저 북한에 회담을 요청했었다. 이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는 북한을) 찾아가서 만나기에 급급했지만 나는 남북관계를 대등하게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自評)했다.

당시 협의에서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남한에 송환하면 남한이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한다’는 내용의 정상회담 의제에 합의했으나 북한은 추가로 최소 5억∼6억 달러 정도의 현물을 요구했다. 3차 정상회담 결렬의 결정적 원인은 북한의 ‘뒷돈 요구’였다. 북한은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켰다. 정상회담 무산과 금전 요구가 먹히지 않은 데 대한 화풀이로 해석할 수도 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를 요구하게 된 데는 우리의 잘못도 크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정부는 현대그룹을 통해 5억 달러를 불법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임기 종료 4개월을 남겨두고 평양을 방문해 2차 정상회담을 열었다. 현금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최대 116조 원이 들어가는 48개 남북 공동사업에 덜컥 합의하고 돌아와 임기 말 ‘대못 박기’ 논란을 자초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하면 기를 쓰고 남북정상회담을 하려 한 것이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여놓았다.

박근혜 새 정부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 박 당선인 스스로도 대선 과정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실험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점에서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면 정상회담을 의도적으로 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돈으로 정상회담을 사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 추진 과정도 일정 시점부터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핵 폐기를 위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2009년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2011년 북한이 또 한 차례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은 북한이 현금 지원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 당선인은 정상회담 가능성은 열어두면서 정상회담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은 떨쳐내기 바란다. 북한 지도자의 답방도 받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핵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헤어지는 정상회담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박근혜#북한#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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