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59>이빨들의 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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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들의 춤
―이수명(1965∼)

집에 돌아오면 늘 이가 빠졌다. 그는 빠진 이빨들을 화장실 물컵에 넣어 두고는 거울을 보며 텅 빈 입으로 웃었다. 아침이면 그것들을 하나씩 차례로 끼고 외출을 했다.

어느 날인가 몹시 피곤하여 돌아온 날 밤 그는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일어나 가보니 이빨들이 컵에서 나와 똑딱거리며 몸을 부딪쳐 가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참 재미있겠구나. 나도 끼워줘.” 그의 말에 이빨 하나가 대답했다. “어서 들어와.” 그는 춤을 추었다. 그러자 이빨들이 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가방 가득 물건을 팔러 다녔다. 언제나 열심히 일했지만 그의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방은 아침이나 저녁이나 무거웠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가방과 가방 속에 있던 물건들은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화장실에 있던 이빨들은 그와 함께 묻혔다. 그는 밤마다 이빨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나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말을 파는 직업을 가진 듯하니, 강사거나 영업사원일 테다. 순하고 심약한 눈빛의 둥글둥글한 눈, 입술은 얇고 머리숱은 성글고, 야윈 몸에 안색은 창백할 것 같다. 대충 그리 상상되는 사나이의 삶과 죽음을 짤막한, 한 편의 초현실적인 애니메이션처럼 보여주는 시다.

열심히 떠들었지만 당최 구매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집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가 흔들렸을 것이다. 아, 힘없는 이빨들. 그런데, 저희들끼리만 있을 때는 ‘똑딱거리며 몸을 부딪쳐 가면서 춤을’ 춘다! 먹고사는 일에서 뚝 떨어뜨려 놓으니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이다. ‘이빨들’, 즉 말들의 춤이란 시가 아닌가? 사나이가 “참 재밌겠구나. 나도 끼워줘”, 말한 순간을 떠올리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빨 하나, 즉, 낱말 하나가 “어서 들어와” 한 순간도. 그런데 사나이가 춤을 추자 이빨들이 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단다! 그가 죽은 뒤에야 함께 춤을 춰주는 매정한 이빨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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