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체력장(體力章)의 추억

  • 동아일보

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내 딸은 얼마나 철봉에 오래 매달릴 수 있을까?” “내 아들은 턱걸이를 몇 개나 할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스포츠 관련 공약을 살펴보다 문득 필자의 고교시절 체력장(체력검정)이 떠오르며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당시 대학입시 만점은 340점이었는데 그중 체력장 점수는 20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의 지원 또는 합격 여부가 1점 차로도 갈릴 수 있기에 체력장은 국영수(國英數) 못지않게 중요했다.

모두들 이를 악물고 뛰고 던졌다. 여학생들이 철봉에 매달려 중력의 법칙에 저항하던 처절한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체력장이 잇따른 학생 사망과 변별력 논란으로 1993년 폐지됐다. 그 이후 학생들의 기초체력과 학교 체육 환경은 동반 추락해왔다. 교내 건물 신축 등으로 운동장은 좁아져 대각선으로도 100m 달리기는 불가능하고 철봉과 모래밭이 없는 학교도 많다. 땅값 비싼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아예 운동장이 없다.

박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국민이 건강하고 체육인이 힘이 나는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10대 체육 공약을 발표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교 체육 전담 교사 우선적 확보와 중고등학생 1인1스포츠 활동 장려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 출신에게 체육교사,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주고 체육시설 확충에 예산만 배정하면 해결될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대입 전형이 바뀌지 않으면 ‘중고등학생 스포츠활동 활성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입시에 어떤 형태로든 체육이 점수로 반영돼야만 청소년들이 그나마 기초체력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요즘 청소년들은 체격만 크지 체력은 형편없다”고들 한다. 한마디로 ‘어른 체격, 아이 체력’이다. 게다가 비만 당뇨 등 소아 성인병도 계속 증가 추세다. 일주일에 서너 시간의 체육 수업 이외에는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박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대입 전형 단순화’를 내놓았다. 대입제도를 손보는 김에 ‘체력장 개선 & 부활’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빨리 달리고, 오래 버티고, 근력이 좋아야만 건강한 것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측정 가능한 항목이어야 점수화할 수 있고 그래야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과 적극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과거의 체력장을 대체한 학생건강체력평가시스템(PAPS)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대학 측이 학생 선발 때 참고하라’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점수와 상관이 없으니 대학과 학생 모두에게 ‘홀대’받고 있다.

‘건강 증진을 위한 자율적인 스포츠 활동’. 표현은 그럴듯하지만 입시지옥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실천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한가하게’ 공 차고 뛰놀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아파트 놀이터에 함께 놀 또래가 없어 친구를 사귀려면 유치원에 가야 하듯, 운동하고 싶어도 함께할 친구가 없다. 학교 끝나면 대부분 학원에 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 프로야구팀의 ‘자율야구’도 실패했으랴. ‘자율’은 결코 만만한 영역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청소년 체육정책은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채찍과 당근이 동시에 필요하다. 체력장과 유사한 강제성을 띤 체력 테스트 결과를 입시에 반영해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의 기초체력을 담보해 줘야 한다. 또 한편 활발한 스포츠클럽 활동을 한 학생에게는 대학입시 때 가산점을 주는 등 운동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맞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건강수명이다. 중장년 이후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운동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라는 말이 있다. 운동도 어려서부터 습관이 돼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나.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체력장#체육#박근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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