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No ear, no mouth, no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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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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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3년 1월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출입했다. 1월 2일 광화문 외교통상부 새 건물에 입주한 인수위 사무실이 문을 연 첫날 출입기자들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인수위원들을 만나 인사도 하고 즉석에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기자는 경제2분과 간사를 맡았던 김대환 인하대 교수로부터 대기업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취재했다. 외환위기 직후 계열사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본이 설립 취지와 달리 재벌 총수의 부당한 부(富)의 세습을 주도하는 창구로 전락됐다는 견해였다.

정무분과 간사를 맡았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공직 호남 편중(偏重) 인사를 시정하겠다고 얘기했다. 지역 문제에서 자유로운 노 대통령이 DJ 정부의 호남 편중 인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틀에 걸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한 두 기사는 노무현 인수위의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정책이었다. 두 기사 모두 대변인 브리핑이 아닌 인수위원 취재를 통해 건져낸 것이었다.

이후 부처에서 파견 나온 기자까지 가세하면서 언론의 취재 경쟁이 불붙자 인수위는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고 공식 창구를 대변인으로 통일했다. 정책 혼선을 막는다는 이유로 인수위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고 개별 접촉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자는 재정경제부 출입 시절 알고 지내던 부처 출신 공무원들과 당에서 파견된 전문위원을 대상으로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의 정책을 꿰뚫고 있으며 참여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냈던 김병준 간사의 자택(서울 종로구 평창동) 앞에서 ‘뻗치기’(취재를 위해 무작정 기다리는 것)한 기억도 있다. 휴대전화도 받지 않던 김 간사는 결국 인근 호텔에서 기자를 따로 만났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설명이었지만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 출입 후에도 정책의 근간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밑거름이 됐다.

일부 인수위원에게는 기자가 밥을 사면서 취재를 했다. 노 대통령이 언론과의 긴장 관계를 요구했지만 그래도 취재할 틈은 열려 있었다. 언론에 적대적이던 노무현 인수위에서 외견상으로는 취재의 문이 닫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력하면 취재원 접근이 가능했다. 밤늦게까지 취재하면 다음 날 아침엔 타지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최근 인수위 업무보고를 마친 한 부처의 고위 간부는 보고 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No ear, no mouth, no eye(귀도, 입도, 눈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되레 기자에게 제발 사정을 봐 달라고 하소연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단단히 입단속을 주문한 탓인지 공무원들은 알아서 기는 눈치다. 박 당선인 논리대로라면 대선공약이 최종 정책으로 확정되기까지는 보도돼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정책은 언론 검증 과정을 통해서 정교하게 가다듬어지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런 것을 불필요한 과정으로 여긴다면 그러한 상황 인식이 우려스럽다.

스티븐 헤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과거 리처드 닉슨과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행정부의 인수위 경험을 바탕으로 “맹수에게 먹잇감을 줘라”라고 조언한다. 취재기자들에게 끊임없이 기삿거리를 제공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만약 이들에게 줄 비스킷이 떨어지면 팔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인수위는 취재의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교각살우(矯角殺牛)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노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무원들에게 “기사 빼달라고 기자들과 소주파티 하지 말라”고 대놓고 윽박질렀지만 쪽문을 열어놓고 소통을 했다. 지금 인수위에선 박 당선인의 말은 안 들리고 ‘인수위 단독기자’라는 윤창중 대변인의 ‘영양가 없는’ 목소리만 높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대통령직인수위원회#박근혜#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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