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가 윈스턴 처칠을 만나 물었다. 위대한 정치가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이 뭐냐고. 처칠은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1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혜안이라고. 고개를 끄덕인 기자가 두 번째 조건은 뭐냐고 물었다. 이번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이 나왔다. 10년 뒤 예측이 틀렸을 때 그걸 해명할 줄 아는 뻔뻔함이라고.
정치의 계절을 맞아 인터넷에 회자되는 농담이다. 물론 여기엔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모르는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농담에서 21세기적 처연함을 느꼈다.
20세기 정치인이라면 10년 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21세기를 사는 정치인에게 이는 도박에 가깝다. 10년 후의 미래는커녕 ‘워프’의 속도로 변하는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기조차 벅차지 않을까.
이에 대처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 과거에 의존하는 것이다. 석학들의 옛날 이론을 토대로 정계 선배들이 짜 놓은 프레임에 맞춰 현실을 재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현 대선이 박정희 대 노무현이라는 과거 지향의 프레임 속에서 치러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구태의연함에 일갈을 가하는 신선한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출판인 180명을 대상으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주고 싶은 책을 조사한 결과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1위로 꼽혔다는 뉴스다.
제목만 보고 유치원생부터 퇴직자까지 한숨 돌릴 틈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린 현대인의 고심을 풀어 주는 책이겠거니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그런 ‘힐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피로사회’의 현실 진단은 전통적 좌우의 관점을 통타한다. 정보화와 세계화가 자유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라는 우파의 관점에 대해선 자유와 탈규제의 이념 과잉이 사람들을 타자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착취하는 ‘자유로운 강제’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진하게 만드는 ‘성과사회’의 폐해다.
이러한 통찰은 푸코로 대표되는 좌파적 규율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규율사회가 금지 억압 감시 배타라는 부정성에 토대를 둔 냉전적 사슬에 묶여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대체한 성과사회는 성취 동기부여 자기주도 자기계발과 같은 긍정성의 주술로 사람들을 내적 소진 상태로 몰고 간다.
냉전시대가 이질적인 타자를 부정하고 제거하려는 면역학의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과도한 동질성이 초래한 공허한 자아의 늪에 빠진 우울증의 시대다. 곧 일체의 타자가 소멸된 ‘나만의 공간’에서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소통이 초래한 긍정성의 폭력’에 골병드는 피로사회의 시대다.
이 책은 “우리도 할 수 있다”와 “불가능은 없다”는 박정희 식 긍정 패러다임이 자기파멸의 독이 될 수 있음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동시에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오욕과 굴절의 역사”라는 노무현 식 부정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매섭게 일깨운다.
그럼 피로사회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뭘까. ‘글로벌 비즈니스로 바빠서 국내 정치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라는 식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란 퇴화한 능력을 살려 ‘깊은 심심함’에 침잠할 줄 아는 것이다. 나머지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다행히도 128쪽밖에 안되는 시집 크기의 소책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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