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실패 아닌 ‘不성공’ 상태의 나로호

  • 동아일보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로켓은 우주로 가는 가장 무식한 방법 중 하나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미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란 인기 강좌를 진행하는 저명한 과학자 리처드 뮬러 교수의 말이다. 에너지의 96%를 연소하며 추진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켓을 사용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중력을 이기는 데 필요한 초속 8km의 스피드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한 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그 ‘무식한 방법’을 취득하지 못했다. 초속 8km라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항공기 이륙 시 속도가 시속 300km이므로 그 100배인 시속 3만 km를 내야 한다. 다단계 로켓을 쓰는 이유도 하나의 발사체로는 도저히 이런 추진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로켓은 튼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손으로 누르면 쑥 들어갈 정도로 연약하다. 고흥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발사체를 본 적이 있다. 케이블이 복잡하게 연결된 내부와 계란껍질처럼 얄팍한 구조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일본 우주로켓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다이 도미후미 박사는 로켓을 계란이나 캔맥주에 비유한다.

그제 발사 17분을 앞두고 상단 고체연료 추력제어기 전기 이상으로 나로호가 다시 주저앉았다. 자동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2분 전이었다. 카운트다운이란 관객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쇼이므로 어느 시점에 발사가 중지됐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10월 26일 헬륨가스를 주입하던 도중 가스가 새는 바람에 한 차례 발사를 연기했던 터라 안타깝지만 의외로 국민 반응은 쿨하다. 나로호 1, 2호를 포함한 수차례의 발사 연기와 실패로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다. 기술진은 머리가 아프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학자의 숙명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어떻게 99번이나 실패하며 전구를 만들어냈느냐는 질문에 “99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99개의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우리도 로켓이 작동되지 않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로켓 발사는 단 한 번의 확실한 연소가 요구되는 한 방 승부다. 처음부터 로켓은 산화하도록 수명이 정해져 있다. 이 수명을 전제로 아슬아슬한 한계선에서 설계를 한다. ‘로켓 개발 성공의 조건’에 대한 논픽션 작가와의 대담에서 고다이 박사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을 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패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발사 실패’라는 말 대신 ‘불(不)성공’이라고 말하자고 제안한다. 그게 그거이지만 ‘불성공’에는 실패를 용인하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현재까지 로켓 발사에 성공한 나라는 9개국이다. 우주강국들도 첫 번째 시도에서 발사를 성공시킨 확률은 27.3%였다. 지금까지 1700회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러시아도 소유스를 쏘아 올린 첫해에는 17회 중 7회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도 1960년대 후반 연속 네 차례나 발사에 실패한 끝에 1975년 N-1로켓을 발사했다.

우주강국의 문턱, 인내 필요한 시간

로켓 발사는 국가경쟁력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1970년이 되기 전에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낸다’는 계획을 발표해 미국인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냉전시대 소련과의 체제 경쟁의 명분을 쌓았다. 중국이 유인 우주선에 국가적 열정을 쏟는 까닭은 국방기술 확보, 국가위상 제고 외에도 중국 공산당의 지배력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도 노리고 있다. 우리에게 로켓 발사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관문을 넘는 일이며 국민 통합의 수단이기도 하다. 나로호가 멋지게 비상하면 좋겠지만 ‘불성공’한다 해도 크게 실망할 것 없다. 나로호는 로켓 개발에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국민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나로호#과학#로켓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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