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5>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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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1935∼1967)

나의 작은 밤 안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이토록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의 시! 탄식소리가 음악처럼 울린다. 사랑-‘생의 열기’에 겨워 파르르 떨면서, 그 사랑을 이렇게나 명징하고 세련되게 그리다니!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인 시인을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가 혼미에 빠지지 못하게 했으리라. 파로흐자드가 이슬람국가인 이란에서 재기 넘치고 생기 왕성한 여성으로 태어난 게, 그에겐 불행이지만 독자에겐 지복이라는, 가혹한 생각을 해본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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