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安 단일화, ‘가치 공유’ 앞세운 數의 정치공학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어제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단둘이 만나 대선후보 등록(11월 25, 26일) 이전에 야권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7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두 후보가 새 정치 공동선언을 내놓고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서명 캠페인에 나서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단일화 협상은 본선(本選)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맞설 야권후보를 결정하기 위한 내부 경선의 규칙을 정하는 절차다. 문, 안 후보의 회동으로 단일화 협상의 마감시간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인 단일화 경선 룰은 양쪽에서 3명씩 협상대표로 나와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문, 안 후보는 앞으로 20일 안에 단일화를 마무리해야 한다. 단일화 경선을 위해선 경선 룰을 정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와 국민참여경선을 선호하지만 안 후보 측은 경선 방식에는 부정적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더라도 ‘적합도’를 묻느냐, ‘경쟁력’을 묻느냐에 따라 우열(優劣)이 갈릴 수 있다. 단일화 여론조사에 박 후보 지지자가 참여해 본선에서 박 후보가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고르는 역(逆)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때도 이를 막는 장치를 두었지만 완벽한 차단은 사실상 어렵다. 두 후보 측은 경선 룰 논의가 자칫 정치공학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어제 논의 내용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두 후보 측은 손을 맞잡고 단일화 공조 의지를 다졌지만 단일화 룰 협상은 순탄하지 않은 고개를 여럿 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지렛대 삼아 40여 일 남은 대선 판세를 뒤집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고 그 동력(動力)으로 본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정치공학적 발상이다. 야권 주변에선 양측이 일괄 협상보다는 하나의 카드를 여러 개로 쪼개는 살라미(Salami) 전술을 구사하거나 후보등록 마감 직전까지 끌고 가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단일화 논의가 지루한 흥행 쇼로 변질되면 국민의 피로감이 커져 역풍(逆風)이 불 수도 있다. 기왕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으면 단일화 경선을 하루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문, 안 후보는 회동에서 ‘가치와 철학이 하나 되는 단일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두 후보 측은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걸어온 길도 많이 다르다. 두 후보는 주요 쟁점에서도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안 후보가 의원정수 축소를 주장하자 문 후보 측은 “정당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반박했다. 두 후보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 구현을 동렬에 놓고 있으면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인다.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가 손을 잡는 것은 단일화 없이는 박 후보를 꺾을 수 없다는 정치적 산술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두 후보가 공유하는 최대 가치는 박 후보를 꺾는 정권교체이며, 두 후보가 공유하는 철학은 두 사람이 합쳐야 박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수(數)의 철학’이다. 단일화의 명분과 수의 정치공학이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문, 안 후보 측은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합의처럼 집권에 대비해 권력 지분을 나누는 논의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실무 협상팀이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밀실 협상을 한다면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권력 지분 나누기 등 민감한 현안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 국민들의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일화 협상이 본격화하면 웬만한 대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국민은 후보들의 정책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거나 미래 청사진을 비교 검증하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무슨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대선을 20일 남짓 앞둔 시기에 최종 후보가 정해지는 것은 기형적이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가 “단일화를 구걸하거나 단일화가 강요되는 정치는 이번 대선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부작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묻지 마 단일화’ 대신에 프랑스 대선처럼 1차 투표에서 과반(過半)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1, 2위 득표자로 압축해 본선을 치르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때가 됐다.
#문재인#안철수#단일화#정치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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