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지 확대 좋지만 내 주머니 세금 나가는 건 싫다”

  • 동아일보

건전재정포럼과 한국재정학회가 한국갤럽과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복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응답자 가운데 대다수는 복지가 확대돼야 한다면서도 정작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증세(增稅)보다는 다른 씀씀이를 축소하거나 면세(免稅)자를 줄이는 방안을 선호했다. 복지 확대에는 찬성해도 ‘내 주머니에서 세금이 나가는 건 싫다’는 심리다. 대선후보들이 쏟아낸 복지 공약의 뒷감당이 힘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고(高)복지 저(低)부담’을 바라는 개인들의 이기적 성향을 탓할 수는 없다. 이기심은 인간 본성이자 경제 활동의 근간이다. 정치는 개인의 이기심과 약자를 돕는 이타심의 충돌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내 국부(國富)를 키우고 민생을 살찌우는 일이다. 그래서 경제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대선후보들이 귀에 솔깃한 복지 공약을 남발하고 뒷감당에서 국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리더로서 자격 미달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복지 공약을 실제로 이행하려면 차기 정부 5년 동안 해마다 각각 54조 원과 128조 원이 더 투입돼야 한다. 장밋빛 복지 공약을 쏟아내는 대선후보들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꺼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은 예산 구조조정과 조세 감면 축소로 연간 27조 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장 증세 계획은 없다”고 발을 뺐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부자 증세와 법인세율 인상 카드를 꺼냈지만 막대한 복지 공약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국민 모두가 조금씩 세 부담을 더 져야 한다”며 ‘보편적 증세론’을 주장했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투명한 세원에 역행하는 ‘간이 과세자 확대’라는 주장을 들고 나와 어느 쪽이 본심인지 혼란스럽다.

고령화와 장기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복지 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대선후보들은 얼마를 어디서 걷어 어떻게 쓸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남유럽 사태에서 보듯 저성장 속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만 내고, 대다수의 국민이 보편적 복지의 그늘에 안주하게 되면 나라 곳간이 감당할 수 없다. 조세 저항도 커진다.

증세를 하자면 과세 기반을 늘리고 탈세와 지하 경제를 양지(陽地)로 끌어올리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무리하게 세율을 올리면 투자가 위축되고 소득이 지하로 숨는 것이 돈의 생리다. 땀 흘려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식이라면 우수 인재와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할 공산이 크다. 경제를 살려 세금을 내는 기업과 근로자를 늘리는 것이 세수를 근본적으로 늘리는 길이다.
#복지 확대#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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