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文 후보는 ‘무상의료 재앙’ 알고 말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4일 03시 0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후보들에게 질문한 정책 이슈 10가지에 대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국민 모두가 질병 치료에 대한 걱정과 부담 없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답해 사실상 무상의료 찬성 의사를 피력했다. 다른 후보들의 정책도 문 후보 못지않게 포퓰리즘 성향을 드러냈지만 무상의료는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

문 후보가 생각하는 무상의료는 영국이나 스웨덴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 모델일 것이다. 이들 국가의 무상의료 재원은 세금이다. 1947년 무상의료를 도입한 영국은 국민 1인당 연간 2000파운드(약 360만 원)를 무상의료를 위한 세금으로 낸다. 한국의 직장건강보험 가입자의 연평균 보험료는 2011년 말 99만 원이다. 문 후보는 무상의료를 시행하자면 국민이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얼마나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병원은 전부 국공립이고 의사는 공무원인 의료체계는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質)을 떨어뜨린다. 영국에선 좋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자면 몇 달씩 대기해야 한다. 부유층은 질 좋은 진료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면 그만이지만 서민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려야 한다. 부유층은 공영보험 외에 사보험에 가입하므로 의료 양극화도 심하다. 박봉에 묶인 의사들은 사명감이나 신기술 개발 의지가 떨어진다. 우수 두뇌들이 의대를 기피해 영국 병원은 인도나 파키스탄 등의 외국인 수련의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보장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회원국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은 사실이다. 암 등 중증질환의 보장수준이 낮아 중병에 걸리면 경제적 타격이 크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도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사실상 무상의료다. 중증질환에 대한 낮은 보장수준은 보험료 부담을 높여 보장수준을 늘리는 방안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무상의료는 가수요를 부른다. 무상급식을 한다고 학생들이 한 끼 먹을 점심을 두 번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료가 공짜라고 하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서 드러눕는 사람이 늘어난다. 시간이 남아돌고 아픈 곳이 많은 노인의 의료쇼핑이 급증할 것이다. 보건의료미래위원회가 추계한 2020년 국민의료비는 256조 원이다. 그냥 둬도 의료비는 고령화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문 후보는 무상의료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문재인#무상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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