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줄줄이 거짓보고’ 軍 언제 정신 차릴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북한 병사의 귀순 과정에서 우리 군의 부실한 대응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최전방 경계병들은 북한 병사가 침입한 것을 까맣게 몰랐다. 군 상층부는 “폐쇄회로(CC)TV를 보고 귀순 사실을 알았다”는 합참의장의 국회 보고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철책선을 넘어온 북한 병사가 처음에는 동해선 철도경비대 출입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어 30m 떨어진 일반소초(GOP) 생활관(내무반)으로 이동해 귀순한 사실도 어제 새로 드러났다. 북한군이 최전방 경계지역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우리 군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차라리 개를 키웠으면 짖기라도 했을 것 아닌가.

정승조 합참의장은 8일 국회에서 북한 병사의 귀순을 소초에 설치된 CCTV로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국민은 합참의장의 말을 믿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강원 고성군의 육군부대는 귀순 사건 다음 날인 3일 북한 병사가 내무반 문을 두드려 알게 됐다고 1군사령부에 보고했고, 곧바로 합참에 전해졌다. 그런데도 합참은 국회 보고 이틀이 지나서야 ‘CCTV 확인’이 사실과 다르다고 실토했다. 정 의장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관련 부대 간부들은 합참의장의 ‘거짓 보고’를 알면서도 입을 닫아버렸다. 말단에서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기강 해이다.

합참의장은 군령권(軍令權)을 행사하는 최고 지휘관이다. 북한 병사의 귀순 같은 중요 사안과 관련된 보고가 엉터리라면 누가 합참을 믿겠는가. 군이 평상시에도 이처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북한의 도발로 혼란이 극심해지면 과연 대처할 수 있을지 통탄할 일이다. 합참은 어제 정 의장이 잘못된 보고를 하게 된 경위를 밝혔으나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병사 귀순 당시인 2일 오후 7시 30분부터 3일 오전 1시까지 소초 CCTV는 작동했지만 영상 녹화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합참 상황장교는 1군사령부로부터 귀순 경위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고도 보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군이 아직도 감추는 게 있다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군은 2년 전 천안함 폭침 때 거짓 보고와 늑장 보고로 질타를 당하고 재발 방지를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경계 태세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보고 체계도 엉망이었다. 잘잘못을 철저히 가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군대#거짓보고#북한군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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