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브레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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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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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출신의 스물다섯 살 청년이 한국에 온 것은 1966년 봄이었다. 그때부터 고희를 넘긴 지금까지 그는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으로 반세기 가까이 살고 있다. 강원도 탄광촌에서 10년을 보낸 뒤 서울의 재개발 현장과 달동네로 옮겨 다니며 헌신한 그의 여정은 “아픈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배고픈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 ‘빈자(貧者)의 등불’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한국 이름 안광훈. 그는 바로 로버트 존 브레넌 신부다.

▷어제 서울시 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천주교 강원도 정선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 1972년 주민 30여 명과 함께 정선시민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조합은 현재 4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할 만큼 커졌다. 지역병원이 없는 정선군민을 위해 1975년 성프란치스코 의원도 열었다. 1981년 서울로 옮긴 뒤 강북구의 달동네에 살면서 재개발 지역 주민을 위한 임시 이주단지 건립을 이끌어내는 등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일자리 창출, 소액대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개발 때문에 세 번이나 셋집에서 쫓겨났다. 그는 “남은 생도 이곳에서 보내며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40여 년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보살피다가 7년 전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으니 남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간 외국인 수녀들도 있다. 주민들이 ‘큰 할매, 작은 할매’로 불렀던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다. 이들은 장갑도 끼지 않고 환자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해외 의료진을 초청해 수술을 주선했으며 한센인 자녀를 돌보는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환자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소리 없이 떠났다.

▷15년 전 오늘 ‘가장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불렸던 테레사 수녀가 인도 콜카타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난하고 병든 이를 돕는 데 일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 이 세상엔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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