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성택 옆에 두고 광복절 골프 친 주중대사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8일 03시 00분


이규형 대사를 비롯한 주중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광복절에 집단 골프를 즐긴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 전체 직원 82명 가운데 41명이 참가한 행사였다. 주중대사관 측은 “최근 직원들이 많이 교체돼 송별회와 단합대회 차원에서 골프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매년 3월 1일과 8월 15일 단합대회를 했다”고 해명했다. 대사관 측의 해명대로 3·1절과 광복절마다 그런 단합대회를 했다면 더 큰 문제다. 단합대회도 좋지만 왜 하필이면 국경일에, 그것도 골프로 해야 하는가.

더구나 당시 북한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주중대사관은 다른 어느 때보다 경각심을 갖고 촉각을 세워야 할 상황이었다. 대사관의 정무라인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면피(免避)가 될 순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대사는 제자리를 지키면서 북-중 접촉 결과를 챙겼어야 한다. 세계의 이목이 중국으로 쏠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 대사와 외교관의 절반이 장성택을 옆에 놓고 한가하게 ‘굿 샷’이나 외쳤으니 나사가 빠져도 한참 빠졌다. 노무현 정부 때 이해찬 총리가 철도파업의 와중에서 3·1절에 골프를 쳐 불명예 퇴진한 일을 잊었던 모양이다.

지금 동북아는 ‘신(新)냉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태로운 외교적 격랑에 휩싸여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독도와 과거사 문제, 한국과 중국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 납치 및 고문,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일반 국민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판인데, 정작 동북아 외교의 핵심인 주중대사관 직원들은 태평성대(太平聖代)인 듯하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기에 여느 공직자들보다 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고, 투철한 국가관과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작년 “복무기강 문제는 무관용”이라고 했지만 주중대사관만은 예외였나 보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들어서면서 외교부의 기강이 풀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외교부는 광복절 집단 골프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해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사설#북한#장성택 방중#광복절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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