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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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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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보고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이 연극은 서울 강남의 한 여자중학교에서 ‘왕따’에 시달리던 학생이 자살한 뒤 가해자로 지목된 다섯 학생의 부모가 벌이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 상담실에 모인 부모들은 자살 학생의 유서를 태워버리고 삼키며 증거를 없애려 든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가해학생들은 죄책감은커녕 배고프다고 투덜대며 자살 학생의 장례식에 뭘 입고 갈지 고민한다. ‘괴물 아이’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괴물 부모’라는 메시지가 섬뜩하다.

▷연극의 원작자는 일본의 고교 교사 출신 극작가 히타자와 세이고. 2006년 일본 후쿠오카 현에서 발생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극본을 썼다. 2008년 일본에서 공연돼 많은 관객을 모았다. 사실 ‘왕따’의 본고장은 일본이다. 이질적인 존재를 철저히 배척함으로써 공동체의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독특한 문화에서 유래됐다. 히타자와는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연극은 가해자의 이기심을 묵묵하게 고발한다.

▷경기 가평 A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장애 학생이 발작으로 괴로움을 겪는 동영상을 가족이 공개했다. 왜소하고 야윈 체격의 소년이 입이 마비돼 고통으로 펄쩍펄쩍 뛰다 침대에 쓰러진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 학생과 부모들이 제대로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동영상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공개할 때 우리 가족은 세상의 마지막 끈을 잡는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올해 2월 가해 학생의 학교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내용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했다. A중학교도 이 매뉴얼에 따라 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줄지 모르는 학생부 기록만은 못 받아들이겠다고 버틴다. 한 학부모는 “아이의 장래 희망인 외교관이 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 여부는 부모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자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니 부모 얼굴’이 결국 ‘내 얼굴’임을 깨닫게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신시컴퍼니#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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