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수]대법관의 전문성 중립성 다양성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명의 대법관 후보가 임명 제청됐다. 그러나 그 결과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법부와 대법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사법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특성은 독립성이다. 사법의 독립성이 전제될 때 사법의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으며, 사법의 중립성은 사법의 본질인 공정한 재판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인선의 정치성 배제해야


사법의 독립은 정상적인 사법기능을 위한 대전제로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과도 연결된다. 최근 일부 판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정치적 의견 표명이 크게 문제됐던 것도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관의 임명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것을 걱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것이 사법과 정치가 무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법이 정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선거소송에서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을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은 실로 막중한 것이다.

이처럼 사법이 직간접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사건들에 중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이 불가결한 조건이다. 사법부의 수뇌부인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할 때에도 법률가로서의 전문성 외에 정치적 편향성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현행 헌법은 대법관의 임명에 관해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 규정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법부의 독립이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법원장이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해 그러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영향하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법의 독립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한다. 과거 촛불시위사건에 대한 재판과 관련해 신영철 대법관이 법원장 시절 담당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냈던 것이 문제 됐던 이유도 모든 법관은 재판에서 법원 내부로부터의 영향에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外壓과 맞서 싸울 용기와 신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법원장의 개인적 의견에 따라 대법관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관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된 후보자를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하지만 대법관추천위원회의 구성 방식에 대한 비판이나 추천 결과에 대한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복수 추천된 후보자 중에서 대법원장이 최종 후보자를 낙점하는 방식 역시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과다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대법관 인선의 기준이 먼저 분명하게 정립돼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추천 결과의 정당성, 나아가 추천위 구성의 정당성까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인선의 기준으로 가장 먼저 강조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문성이다.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준으로는 공정성 및 중립성을 들 수 있다. 사법의 본질인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존의 판결들을 통해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를 지키기 위해 외압(外壓)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신념까지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법관의 자격을 갖춘 법률전문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사회의 여러 부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을 때 개인의 판결이 아닌 합의체에 의한 판결이 갖는 장점, 즉 신중과 숙고를 잘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보수와 진보 성향의 다양성이 아니라 경험이나 전공분야 또는 성별까지 고려한 다양성이 대법원의 제 기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법관추천위원회의 구성부터 전문성과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추천위에서 추천된 임용 후보자를 대법원장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순위에 따라 제청하도록 함으로써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법관 임명에서 갖는 비중을 낮추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법관의 인선이 보다 합리화될 경우 우리 대법원이 내세우고 있는 국민과의 소통 또한 실질화할 수 있고 국민의 더 큰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amt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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