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인 한국사회와 다정다감한 한국인에게 호감을 갖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국문화의 기저에는 한국인의 남달리 강한 단체의식이 깔려 있다. 강한 단체의식은 개인의 개성을 조금씩 희생해 그 대가로 얻는 공동의 이익이 훨씬 클 때 빛을 발한다. 그러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희생이 요구된다면 그 사회는 건전하다고 할 수 없고, 문화도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유교식 전통에서 다져진 강한 단체의식과 자본주의식 경쟁체제와의 불편한 공존에서 비롯된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고 믿는 한국인을 지나친 경쟁으로 몰아세우면 경쟁은 심화될 뿐이다. 단체의식과 일체감이 강한 사회는 구성원 간 경쟁이 별로 심하지 않을 때만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구성원 간 경쟁이 심해지면 집단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고, 결국 개인주의 사회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의 강한 단체의식과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무한경쟁에서 비롯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내가 홍콩에 살면서 놀라웠던 사실 가운데 하나는 홍콩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낮다는 것이다. 홍콩은 한국보다 사회보장제도가 엉망이고 빈부 격차가 심각한 완전 시장경쟁체제 사회다. 그런데도 훨씬 더 많은 한국의 젊은이가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 이는 역동적이라고 자부하는 한국문화 이면에 뭔가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영(虛榮)’이란 말은 ‘헛된 영예’라는 의미인데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하거나 쓸데없는 곳에 돈과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보고 “허영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 빚을 내서라도 명품 옷이나 가방을 사는 한국 사람들이 허영심이 많은 것인가? 나는 아닐 수 있다고 본다. 허영심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엄밀하게는 ‘실익이 없는 자기만족’이다. 그런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없어도 있는 척하는 행동에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따돌림당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적인 측면이 다분히 있다. 이런 경우 자기만족을 위한 허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남의 이목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되는 과소비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이기보다 사회의 문화적 특성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만의 헛된 꿈, 즉 ‘허영심’을 좀 더 가져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똑같은 목표로 인생을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회가 좀 더 다양해지고, 불필요한 경쟁도 조금은 완화되고, 좀 더 매력적인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사회나 그 당시의 허영심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매력적이라고 부를 만한 문화는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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