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키스 도둑’과 ‘머리채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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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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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영국 맨체스터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 벌어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2011∼2012시즌 우승팀이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로 결정되는 순간 관중석에 있던 홈팬 수천 명이 축구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후반 정규시간이 종료될 때까지만 해도 맨시티는 한 골 뒤지고 있어 44년 만의 1등이라는 영예는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5분의 추가시간에 두 골을 넣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자 흥분한 팬들이 스탠드를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가 끝나거나 끝나기 직전에 관중이 경기장으로 난입하는 현상을 영국에서는 ‘운동장 침입(pitch invasion)’, 미국에서는 ‘운동장 돌진(rushing the field)’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대학 미식축구나 농구 경기에서, 영국에서는 하위리그 축구 팀들 간의 경기에서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패배했을 때 분노해서 뛰어드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역사에 남을 만한 극적인 승리를 거뒀거나 약체로 평가받던 홈팀이 예상을 뒤엎고 강팀을 이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침입자’ 수는 상관없다. 1만 명이어도 1명이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1970∼90년대 모개너 로버츠라는 운동장 침입자가 유명했다. 이 여성은 주로 메이저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에 뛰어들어 유명 선수의 볼에 키스를 했다. 노히트노런을 7차례나 수립한 투수 놀런 라이언을 비롯해 당대의 스타들이 ‘희생양’이 됐다. 한 신문이 모개너에게 붙인 ‘키스 도둑’이라는 별명은 아예 애칭이 돼버렸다. 나중에는 관중도 선수들도 모개너가 운동장을 질주하면 놀라는 대신 웃음과 박수로 화답해줬다.

▷한국에서는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를 끌던 1980년대까지 우승팀 동문이나 학생들이 운동장 침입을 한 적이 있었다. 통합진보당의 12일 중앙위원회 석상에서도 관객이 밀고 들어오는 ‘운동장 침입’이 벌어졌다. 당시 무대 위로 뛰어올라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채를 뒤에서 잡아당겼던 여성은 ‘머리채녀(女)’라고 불린다. 키스 도둑의 운동장 침입은 애교라도 있었지만 어금니 앙다물고 아버지뻘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드는 모습은 악에 받쳐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동용 주말섹션O₂팀 기자 mindy@donga.com
#맨유#맨시티#운동장 침입#머리채녀#키스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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