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이면 교정마다 ‘스승의 은혜’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 노래는 행사로 치부되고, 스승의 날도 요식행위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부모님만큼이나 제자를 보살펴 주시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릴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사들을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극찬한 것에 비하면 지금 한국의 교육자는 사회적 냉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 데는 교육당국과 교육자 자신의 잘못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예전보다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고 비인간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직만은 성직이어야 한다는 국민의 보편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교육당국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도 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서울시의회가 교육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논리로 표결을 강행해 통과시킨 학생인권조례, 교권보호조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특히 학교 현장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다. 한 설문조사에서 ‘학생인권조례 시행과 교실 붕괴, 교권 추락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 93%가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서울시의회와 함께 ‘서울교육희망공동선언’을 했다. 서울교육 정책 전반에 대한 공동 원칙을 발표한 선언식은 ‘교육·복지 민관협의회’ 출범에 앞서 시청, 시의회, 시교육청이 공통의 교육 철학과 정책 방향을 알린다는 취지로 열렸다. 서울교육에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시와 의회가 교육청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그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절차와 발등에 떨어진 교육현안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째, 전교조를 제외한 교원단체들이 빠져 있다. 결과야 어떻든 이 선언은 교육감과 뜻을 같이하는 ‘그들만의 잔치’가 돼버렸다. 둘째, 선언문이 지향하는 가치의 설정도 문제다. 선언문은 향후 서울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토론과 합의, 이해와 설득이 있어야 옳다. 그것 없이는 일방 선언일 뿐이다. 셋째, 실현 가능성의 문제다. 선언문에 담긴 내용은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과제가 대부분이다. 시와 의회, 교육청이 머리를 맞댔다고는 하지만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보여주기’에 불과하며, ‘포퓰리즘’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다. 넷째,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을 외면하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학생들의 가슴이 멍들고 상처받고 있다. 날로 팽창하는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고통받고 있다. 학생들을 소신껏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들의 볼멘소리도 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선언의 정치적 의도다. 일부 언론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서울시교육감의 노림수가 있다고 한다. 그동안의 교육감 행보로 미뤄볼 때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점들이 있다.
스승의 날에 즈음해 희망선언을 할 거라면 최우선적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을 회복하는 희망선언이 됐어야 가슴이 시퍼렇게 멍든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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