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유세 중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이념투쟁이냐 민생이냐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박 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도 민생을 강조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유세에서 “99%의 민생을 파탄 냈던 이명박 정권 4년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정치권은 약속대로 민생을 보살펴야 할 때다.
정치권이 공짜 복지로 민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기획재정부는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다 지키려면 5년간 최소 268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재정부 발표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밝혔지만 재정부는 재정을 지키는 본연의 일을 한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여야가 쏟아낸 복지 공약은 재정 형편으로 보아 실현 여부가 불확실하다.
야권은 출자총액 규제의 부활, 법인세 인상 등을 공약했고 19대 국회가 시작되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재벌개혁’ 구호를 감안하면 대선 정국까지 순환출자 해소 등 대기업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나 횡포는 법에 따라 조치해야 옳지만 기업 규모와 이익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규제를 한다면 일자리 감소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기업정책은 외국인투자가가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민주당은 올해 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외쳤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자 ‘재협상’으로 말을 바꾸었다. 정권 또는 국회 다수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 협정을 뒤집거나 폐기하는 나라라면 세계가 상대하기 꺼릴 것이다. 국정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민주당이 국격을 추락시키는 과도한 주장을 펴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새누리당이 국회 의석수의 과반(過半)을 차지함에 따라 한미 FTA 폐기 주장은 현실적인 추진 동력을 잃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 등을 보완하는 대미(對美) 협상에서 한미 FTA 반대파의 불만을 줄이려 하기보다는 종합적인 국익 극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이어지면 민생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증세(增稅)도 소득세 등 과세 기반을 넓히고 역외(域外) 탈세를 강력하게 잡아내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징벌적 세율 인상, 재벌세(稅) 신설로는 후유증만 키울 수 있다. 새로 구성될 국회가 공약의 거품을 빼고 알뜰하게 나라살림을 꾸려 나가야만 민생을 살찌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