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심청은 중국인이 구했다?

  • 동아일보

하종대 사회부장
하종대 사회부장
중국의 남동부 저장(浙江) 성 닝보(寧波) 시 앞바다 저우산(舟山) 군도엔 효녀 심청(沈淸)을 기리는 심청공원(중국명 선위안·沈院)이 있다. 한국의 고대소설 심청전의 주인공을 추모하는 공원이 중국에 있다니…. 알아보니 연유가 있었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섬에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한국의 심청전에서는 심청을 용왕이 살리지만 중국에서는 닝보 주민들이 구출해 돌려보내 백제(百濟)의 왕후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닝보는 항구로 파랑이 거의 일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다. 저우산 군도가 천연방파제 역할을 한다. 돛단배로 무역하던 시절엔 파도가 잔잔한 항구가 절실했다. 닝보는 국제무역항으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닝보는 한국의 서남부 연안 해류가 자연스럽게 닿는 곳이기도 하다. 이 해류가 바로 저장 성과 한반도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닝보는 예전부터 한국과 교류가 많았다. 사람과 무역선의 왕래가 줄을 이었다. 닝보엔 한국 관련 유적이 적지 않다. 닝보 시내 중심엔 북송(北宋) 시절 고려 사절과 무역상이 머물던 고려사관(高麗使館)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해상왕 장보고, 송나라 천태종을 중흥시킨 고려 초 고승 의통(927∼988년), 송나라에서 유학한 대각국사 의천(1055∼1101년)의 활약상이 1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시대 사간(司諫)까지 올랐던 최부(崔溥·1454∼1504년)가 제주도에서 육지로 오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닿은 곳도 닝보 시다. 그가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하면서 소개한 저장 성의 수차(水車)는 당시 충청도 가뭄을 극복하는 데 크게 활용됐다.

닝보 현지어엔 한국어와 발음과 뜻이 똑같은 것도 있다. ‘이제(一在)’는 현재라는 뜻으로, ‘어서(아索)’는 ‘빨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심지어 ‘창문(窓門)’은 발음과 한자 표기가 똑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청자가 저장 성의 월요(越窯)청자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모두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지난달 닝보 시를 방문하면서 보고 들은 얘기다. 류하이취안(劉海泉) 닝보 부시장은 “인구 800여만 명의 닝보 시와 한국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인연이 있다”며 “여수엑스포에 적극 참가하고 직접 홍보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닝보 시는 중문으로 만든 선전책자와 기념배지까지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닝보 외에도 중국엔 한국 관련 유적이나 설화, 한국의 역사인물 얘기가 수두룩하다. 그만큼 오랜 기간 양국 국민이 교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지만 한중 관계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최근 방한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지만 4년 전 양국이 목표로 설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요원하기만 하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가 아무리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나라다. 양국의 민간 교류는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서로 방문한 양국민은 1156만여 명에 이른다. 홍콩, 마카오를 포함하면 양국 사이엔 매주 1420회의 항공편이 뜬다. 지난해 양국 무역액은 2456억3000만 달러로 한국의 무역흑자는 798억 달러나 됐다.

맹목적인 원칙론이나 충동적 감정이 아닌 냉철한 머리와 넓은 시야로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종대 사회부장 orionha@donga.com
#광화문에서#중국#닝보#한중수교20주년#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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