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원목]反FTA 포퓰리즘과 ‘인간의 얼굴을 한 통상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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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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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국민과의 소통 정치로의 전환을 이룰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금 통상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통합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네거티브시스템 개방, 역진방지조항 등을 없애지 않으면 FTA 전면 폐기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정하고, 이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까지 했다. 진보정권에서 이미 수용키로 한 사항들을 빌미로 이제 와서 이를 삭제하지 않는다고 FTA 전면 폐기를 선언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ISD를 삭제하거나 FTA 자체를 폐기하면 미 의회가 원래 한미 쇠고기합의서 내용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도 재개하자는 등 막대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김정일 사망 후 한미 안보협력 관계의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 한미 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물론이다. 2014년 말이면 우리는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쌀 수출국들과 쌀 관세율을 정하는 협상을 거쳐야 하므로 미 측을 달래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 국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됨을 의미한다. 5년여 동안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달성한 역사적 과업을 원점으로 돌리면 막대한 매몰비용과 국론 분열의 비용만 남게 된다. 향후 거대 경제권과의 FTA 협상 진행을 당분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에 환태평양파트너십협정(TPP) 등으로 점점 더 불록경제화하고 있는 아태지역에서 우리 기업들만 해외 수출시장에서 차별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ISD는 남용 가능성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목표인 글로벌 교역투자체제를 갖추는 데 필요한 요소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서비스시장을 개방한 것이 반드시 미국의 다국적 업체들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양허표에 일일이 기재하지 않으면 개방한 것으로 간주되기에 그만큼 협상 담당자들은 신경 써 정부의 규제권한을 기재(유보)해 놓기 마련이다. 한미 FTA에 100개가 넘는 우리 정부의 규제 권한이 기재돼 있는 이유다. 역진 방지 조항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규제 완화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조항이 있기에 정부는 현존하는 규제의 수준을 실제로 완화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많다. 한 번 완화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그만큼 당국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마당에 쉽게 규제를 완화할 공무원이 있겠는가. 이런 조항들을 독소조항으로 단정 짓고 폐기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극단 노선이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을 정부와 여당은 직시해야 한다. FTA 비교우위론이 장밋빛 미래로 연결되려면 단기적 관세 철폐 효과가 장기적 산업경쟁력과 경제 효율성 증대로 이어져야 한다.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비교열위 산업으로부터 비교우위 산업으로 유연하게 이동해 생산역군화 할 수 있는 노동환경도 갖춰야 한다. 정치권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FTA의 막연한 이익을 젊은층 유권자에게 설득하기는 어렵다. 급속히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저소득층 보호 요구를 FTA 정책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한미 FTA는 예정대로 발효시키되 ISD 제도의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절차기준을 보완하는 내용의 개정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중소상인의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유보조항도 새로 추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민주적인 저소득층 보호정책의 국제법적 정당성도 확보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통상(human-faced trade)’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돼야 하며, FTA 추진정책도 이에 따라 재조정돼야 한다. 물론 이런 협상이 타결되려면 우리도 미 측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정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선거철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농민 표심 공약이 결국 농민 자신의 생존에도 해가 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정부도 포퓰리즘이 갖고 있는 파괴 에너지를 새로운 정책 대안의 추진 에너지로 과감히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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