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은 골프 당구 바둑을 즐길 때 핸디캡(handicap) 플레이를 한다. 경마도 출주마의 기량에 따라 부담중량을 달리한다. 실력차가 뚜렷한 고수와 하수가 대결하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19대 총선(4월 11일)이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선거에도 핸디캡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구체적으로는 ‘징벌적 핸디캡’을 적용해 ‘결코 당선돼선 안 될 사람’은 솎아내자.
징벌적 핸디캡은 후보자의 허물 총량에 비례해 득표수를 깎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징역(실형)은 2000표, 집행유예 1500표, 구속 1000표, 보좌관이나 친·인척 비리는 500표씩 총득표에서 삭감하는 방식이다. 문턱이 닳도록 검찰청을 드나든 사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리 만무하다.
이와 관련해 “의정활동을 잘한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총득표의 몇 퍼센트를 보너스로 줘야 공평한 것 아니냐”는 역제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에 관련한 아이디어는 현재로선 떠오르지 않는다. 연말마다 법안 수백 건이 졸속, 날치기 처리되고 나라의 미래와 서민의 생계가 걸린 주요 법안이 당파싸움에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를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0%인 제안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핸디캡 선거제’(가칭)를 법으로 만드는 주체는 바로 국회의원이 아닌가. 자리 보전에 혈안이 돼 있는 그들이 스스로를 옥죌 가능성이 높은 엄격한 잣대를 허용할 리 없다.
이 때문에 ‘한국 정치인 신용평가기관’이 하루빨리 설립돼야 한다. 또 하나의 ‘권력’이 되지 못하게 서로 감시할 수 있으려면 최소 3개는 필요하다.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영국의 피치IBCA가 발표한 신용등급은 해당 국가의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
투자적격자(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현역 정치인 또는 지망생)에게는 표를 몰아주자. 반면 핸디캡이 많아 투자부적격 판정을 받은 후보에게는 차기 선거에는 아예 출마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참패를 안겨주자.
유권자들은 선거철마다 “국가와 당신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 냉철히 판단해 투표하라”는 계도성 문구(文句)를 접한다. 유권자가 항상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또 사람은 망각의 존재다. 게다가 그들은 바쁘다. 직장일과 사업일로 머리는 복잡하고 몸은 파김치다. 그들이 자기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 모두를 꼼꼼히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유권자들이 손쉽게 열람할 수 있는, 공신력이 담보된 후보자 검증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 클릭 한 번으로 확실하게 후보자의 신상을 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치인 신용평가기관은 사업적으로도 유망한 ‘종목’인데 ‘국가대표’는 물론이고 ‘아마추어’ 도 없는 이유는 뭘까. 심증은 99%지만 물증이 없으니 기성 정치인들을 ‘훼방꾼’으로 지목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인 검증 시스템이 상시 가동되지 않으면 경쟁 후보를 매수해 사퇴시키고 전당대회 때 돈을 살포해 대의정치(代議政治)를 농락한 ‘그들’은 멀리건(mulligan·골프에서 티샷을 실수 했을 때 벌타 없이 다시 치는 것. 정식 골프 규칙에는 없는 편법)을 수시로 외칠 것이다. 멀리건은 본인이 아닌 동반자(유권자)가 주는 것인데 후안무치하게도.
스포츠에서는 연승보다 연패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인상(印象)투표로 함량이 부족한 후보에게 금배지를 달아주는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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