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코닥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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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0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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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의 평균수명은 27년이고, 전 세계 기업의 평균수명은 13년이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시장, 쫓고 쫓기는 치열한 경쟁으로 100년 장수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이스트먼 코닥’은 대표적 장수기업이다. 1881년 사진 기술자 조지 이스트먼이 설립한 코닥은 131년 역사를 자랑한다. 코카콜라 월마트 등과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이던 코닥이 19일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창업자 이스트먼이 타계한 지 80년 만에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코닥은 롤필름 컬러필름 코닥카메라와 같은 독보적 기술 개발을 주도해 ‘필름 제국’으로 우뚝 섰다. 1970년대 미국 필름 시장의 90%, 카메라 시장의 85%를 점유했고 14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디지털 대세(大勢)’를 간과했다가 치명타를 맞았다. 1975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도 세계 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한 필름사업에 안주(安住)했다. 눈앞의 달콤한 수익에 탐닉할 때 소니 등이 ‘디카’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한때 100달러에 육박하던 코닥 주가는 엄청난 적자가 누적되면서 1달러 아래로 추락한 지 오래다.

▷코닥의 반대편에 IBM과 애플이 있다. 컴퓨터업계의 선두주자이던 IBM은 후발업체들이 맹렬하게 추격하자 1990년대 이후 범용PC에서 과감하게 손을 떼고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설계 등을 특화해 세계 정상의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했다. 애플은 IBM HP 등에 밀려 PC 시장에선 재미를 못 봤으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을 추구하며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강조한 스티브 잡스의 창조적 혁신 덕분이다.

▷코닥 본사가 있는 뉴욕 주 북단의 로체스터는 사실상 코닥이 먹여 살린 도시다. 시민들에게 대를 이어 일자리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고 재산의 대부분을 로체스터대 등 지역사회에 기부한 이스트먼의 사업철학이 사후(死後)에도 이어졌다. 코닥은 1만100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많은 직원이 코닥에서 배운 기술과 연구 인프라에 힘입어 의료기기 광학 영상분야 알짜기업을 창업했다. 그래서 코닥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 지역의 취업인구는 늘고 있다. 코닥의 값진 유산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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