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생존주의’가 최고이념이 된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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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4월 11일의 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9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당선된 의원들이 정치와 입법을 어떻게 하느냐가 국민의 삶을 좋아지게도, 나빠지게도 할 수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먼 장래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90일 전’

새로 국회에 들어서는 의원들이 재정과 복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몇 년 뒤 국가건전성과 신인도가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다. 과잉복지로 재정이 거덜 나고 결국 국민이 긴축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 같은 나라는 나쁜 거울이다. 안보정책,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회의 선택은 한반도와 민족의 장래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

국회가 노동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 관광 교육 분야 등의 서비스시장 확대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규제완화 입법을 해낸다면 외국인과 외국자본까지 국내에 많이 불러들여 내수시장을 키우고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한국노총 같은 노동 기득권층과 이념을 앞세우는 정치사회 이익세력의 벽을 깨기는커녕 이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입법이나 한다면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할 젊은층의 장래는 더 암담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 국가라고 하지만 국회의 역할과 결정력은 점점 막강해지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국정을 잘하려 해도 국회가 틀어버리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국민은 수없이 목격했다. 반대로 국회가 최선의 기능을 한다면 대통령과 정부가 나라를 잘못 운영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19대 국회의 수준은 여야 정치권이 어떤 자질의 인물들을 의원 후보로 공천하는지에 따라 1차적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정당들은 국민의 선택권을 높인다며 ‘국민 경선’ 방식으로 후보를 정할 움직임이다. 유권자들은 앞으로 4년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기여할 인물을 여야 정당 및 무소속 후보들 가운데서 냉철하게 찾아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살아남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대 국회에 진출하려는 기성정치인과 정치지망생, 그리고 이들의 대합실 역할을 하는 정당들을 지배하는 이념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생존주의, 즉 서바이벌리즘(survivalism)처럼 보인다. 입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을 내세우지만 목표는 오로지 내가 당선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자신의 정당이 다수당이 되는 것이다.

정치와 정치인의 이런 속성은 어쩔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권력욕과 명예욕을 빼고 나면 정치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투표소에 가는 것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국민은 국회의원에게 입법권 말고도 여러 특권을 주는 대신, 국가와 다수 국민을 위한 헌신을 기대한다. 18대 국회, 그리고 18대 의원들은 이런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정치의 위기를 자초했다. 정당정치, 의회정치에 신물 난 국민은 강력한 공천 물갈이를 요구하고 있다.

정당은 변하고, 국민은 냉철해야

때마침 2008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돈봉투가 뿌려졌다는 폭로가 나왔다. 현재 지도부 선거가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도 금품 살포가 있었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한나라당에서는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돈 공천 의혹도 제기됐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 부패, 선거 부패를 청산한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도 당 대표를 뽑는 데 돈봉투가 난무하고, 국회의원을 공천하는 데 뒷돈을 주고받는 후진적 행태는 날려버릴 때가 됐다. 돈으로 정치를 하거나 돈을 위해 정치를 하는 부정비리 정치인은 19대 국회에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 비전과 전략과 입법능력으로 정치를 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물론 우리 정치가 최악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정치와 정치인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한 시절도 사라진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라는 성공을 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지난날의 정치에 대해서도 폄훼와 부정(否定)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와 국회의 형편없는 생산성, 그리고 도덕적 퇴행, 오로지 선거와 정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결과지상주의에 대한 정치권의 맹성(猛省)을 국민은 요구하고 있다.

우선 19대 총선까지의 90일이 정치인들의 의식과 정치문화를 개혁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국민은 그 과정과 각 정당의 변신을 지켜보고 차가운 머리로 한 표를 행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 또다시 18대 국회와 같은 국회를 만들어줄 것인가. 완벽은 어렵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이 밝은 눈을 가져야 ‘최악의 국회’가 반복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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